서정, 섬처녀의 침묵의 사랑
기사입력 2000년 04월 14일 12시 37분
자궁에 낚시 바늘을 넣는 장면부터 물어봤다. "무서워서 눈을 감아버렸다"고 했더니 서 정이 난리다.
"물안개가 해만 뜨면 사라지잖아요. 4일 동안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찍었어요. 하루는 낚시바늘을 넣는 장면, 하루는 얼굴 클로즈업 장면만 찍었더니 나중엔 기절할 것 같더라구요."
29일 개봉되는 `섬'(김기덕 감독－명필름 제작). 살인을 저지르고 낚시터로 숨어든 현식(김유석)과 낚시터를 지키는 여자 희진의 엽기적인 사랑을 담았다.
그러나 `섬'에 대한 서 정의 설명은 `아름답고 따뜻한 영화'다.
"창녀, 살인자 등 낚시터를 찾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사회의 낙오자들이에요. `섬'은 그들을 시종일관 따뜻하게 바라봅니다."
낚시줄만 해도 그렇다. 가는 낚시줄이 질기게 희진과 현식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사랑의 힘'에 대한 역설적인 강조다.
"노출신이 많아서 부담스럽지 않았냐"고 질문을 던지자 이번에도 한 방 먹인다. "뭐가 야해요? 두 장면 밖에 안나오는데."
섹스신은 이야기 전개상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 에로틱한 표현을 요구한 게 아니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대사 없이 눈빛으로만 연기해야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다음날 중요한 장면이 잡히면 달랑 무전기 하나 들고 세트장으로 숨어들었다. 벌레와 싸우면서 밤을 새우다 그때 느낌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연기는 참 사실적이다. 95년 단편영화 `탈순정지대', 99년 `박하사탕' 등이 출연작의 전부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진짜로 엽기적인 사랑을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실제로도 `아름답지만 위험한 그녀'라는 희진의 캐릭터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희진이처럼 위험한 사랑을 하냐구요? 절대 아니에요.(웃음) 얽매이는 것을 참지 못하거든요. 자유로운 만남이 좋아요."
그러나 고독을 즐기는 점은 자신이 생각해도 닮은 것 같다. 서 정은 네자매중 세째인데,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시간이 나면 서울 평창동에 있는 가나아트센터를 어슬렁거리거나, 책 한권을 들고 예술의전당 노천 카페을 찾는다.
물론 요즘엔 그런 여유를 즐길 수 없다. 단편 영화를 찍을 때는 당연히 홍보와는 거리가 멀었고 `박하사탕'에서도 주연은 아니었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다니진 않았다. 개봉을 일주일 앞두고 하루에 인터뷰를 4∼5개씩하다보니 `섬'을 찍을 때 망가진 몸이 아직 회복이 안됐다. 허리도 19인치 그대로다.
"아직 `섬'에서 못 빠져나온 것 같아요. 원초적이며 치명적인 사랑이 계속되고 있는 듯한 착각에 종종 빠진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강조한다. 이젠 관객들이 `아름답지만 위험한 그녀가 만들어 놓은 섬에 빠질 차례라고.
[전상희 기자 f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