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랑의 연극 `어둠아기 빛아기'
기사입력 2000년 04월 12일 14시 48분
서구의 희곡과 소설, 영화는 따지고보면 신화에서 출발한다. 신화란 수많은 이야기의 보고이자 상상력의 원천이다. 신화를 차용하고 비틀고, 새로운 옷을 입혀서 이야기를 업데이트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단군신화를 비롯해 수많은 신화가 있다. 그런 신화들을 우리는 적절하게 활용해 왔을까. 오히려 근대화 이후 유입된 서양의 정신세계에 심취해 국적불명의 작품들을 양산해 온 것은 아닐까.
이런 도발적인 문제의식 아래 출발한 연극공동체 옥랑이 첫 작품을 선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2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어둠아기 빛아기'(안현정 작, 신용한 연출)가 그 무대.
한민족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가 모티브다. 시골마을의 12세 소녀 명이가 임신을 하자 마을사람들은 수군거린다. 그러다 명이가 동네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아무도 아이의 탄생을 바라지 않게 된다. 자살하기 위해 마을 근처 당집으로 들어간 명이는 농약을 마시고 환각상태에 빠진다. 그때 5000년동안 환웅을 기다려온 곰과 호랑이를 만나게 된다.
곰이 선택되고 호랑이는 탈락하는 단군신화의 스토리를 연장시켜, 인간세계에 실망한 곰(웅녀)이 다시 동굴로 돌아가 호랑이와 함께 `다시 오겠다'는 환웅을 기다리도록 설정했다. 아울러 기다림을 단순히 고통의 시간이 아닌, 자신을 변형시키는 능동적인 과정으로 해석했다. 삶이 곧 기다림이는 뜻이다.
`어둠아기…'는 연극공동체 옥랑의 후원단체인 옥랑문화재단이 `한국연극의 정체성 찾기'를 목표로 98년 여름 야심차게 시작한 `프로젝트 살풀이21'의 첫 결과물이다. 재단은 이번 무대에 이어 무속(바리공주) 판소리(심청전) 가면극(봉산탈춤) 꼭두극(홍동지놀이) 등 전통 텍스트를 차례로 희곡화할 예정이다. (02)747-2062 [김형중 기자 h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