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전여옥 '나만의 재미 CF 읽기'
기사입력 2000년 04월 12일 14시 21분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성공한다'는 버전도 있지만 내 실제 경험으로는 `취미활동이 직업이 되면 그 취미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니다'였다. 그러나 할수 없이 내 직업특성상 `꼬꼬마 텔레토비'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내가 유일하게 보던 것은 `뉴스'였다. 방송기자를 그만두고서는 뉴스보기에서 해방되었다. 한동안은 거의 TV는 보지 않았다. 게다가 몇 년동안 인터넷에 푹 빠져 TV를 보는 시간을 좀체로 낼 수가 없었다. 내게 TV는 더 이상 `먹고사는 문제'도 `매력있는 존재'도 아닌 셈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쩌다 켜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은 광고가 나올 때 이다. 프랑스의 언론학자 셰르방 슈레베르는 광고를 제 4의 권력이라고 했다. 내게 광고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나는 모든 광고를 뚫어지듯 몰입해서 본다. 이렇게 내가 열심히 보는 이유는 광고가 바로 나의, 우리의 가장 정확한 욕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독자가 원하는 책, 필요로 하는 책쓰기를 원하는 현실적인 내게 광고만큼 요긴한 매체는 없다. 화장품광고에서 보이는 씩씩하며 당당한 여성모델의 변화는 곧 여성들의 욕구속에서 남성을 성적으로도 압도하려는 신호를 나타낸다. 신나게 춤추며 나오던 맥주광고에서 두 남녀가 단둘이 푸르른 물속에 빠져드는 듯한 광고는 이제 맥주마시기가 떠들썩한 회식자리가 아니라 일상에서 두 남녀사이에 음료수가 되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중요한 계약을 맺는 자리에서 긴장하는 남자에게 `나의 남자'라고 속삭이는 여성과 그 남성이 바른 화장품- 남성에게 `여성이 선택해준' 화장품이 자신감을 주는 존재가 된 것이다.
나는 이 광고의 신호읽기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남자배우나 탤런트가 나올때는 `그래-쟤 꿈 꿔볼까?'하는 은밀한 신호가 내 머릿속에서 자동송신되기도 한다. 하기는 `내 꿈 꿔-' 버전은 전 국민의 버전이 되지 않았는가? 그것은 바로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사랑받고 싶다는 전국민의 열망을 담은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얼마전 문방구에 들렀더니 아이들을 위한 `내 꿈 꿔'버젼을 담은 미니 책을 500원에 팔고 있을 정도였다.
`모전자전'인가? `내꿈 꿔'라고 주문도 안한 4살박이 아들이 오늘 아침 내게 말했다. `나-엄마 꿈꿨어-'라고. 우와 이럴 수가 `감동！' 까무러치기 직전인 `철없는' 엄마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물었다.
`그래-엄마가 뭐라디?'
`응-엄마 일해야 된다고 저기 가서 혼자 놀라고 그랬어'
아！ 불쌍한 나의 아들….
[방송인 satuki＠chollian.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