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이성진 '전자상가의 껌사기 운동'
기사입력 2000년 04월 11일 15시 41분
`마징가Z도 만든다'는 한국 컴퓨터산업의 메카 용산전자상가에서 얼마 전부터 껌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단다. 사연은 이렇다.
인천에 사는 28세의 평범한 네티즌은 요근래 업무차 용산 전자상가를 자주 방문하면서 추운 날씨에도 길거리에 앉아 껌을 파는 할머니를 알게 됐다.
그는 평소 불우한 이웃에 많은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한자리에서 늦게까지 껌을 파시는 할머니가 유독 눈에 띄어 몇번 껌을 사드렸고, 한번은 그런 할머니가 하도 안쓰러워 몇 마디 말을 건넸다.
사정을 알고 나니 그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딱하더란 것이었다. 한개 300원 하는 껌을 500원에 파는 할머니는 하루 1000원~2000원 벌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끼니도 하루종일 라면 한 개가 고작이었다.
그는 급기야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정을 PC통신 게시판에 올렸다. 용산전자상가를 자주 오갈 사람들은 컴퓨터를 가깝게 다루는 네티즌일 것이라는 점에 착안, 방송이나 신문에 광고를 내는 것보다 온라인상의 게시판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는 할머니가 주로 껌을 파시는 장소와 현재 할머니가 처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글 말미에 자신의 글을 다른 곳에도 퍼뜨려 달라는 부탁을 했다.
한 네티즌의 이런 작은 호소가 네티즌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평범한 직장인의 글을 본 몇몇 네티즌이 여기저기 글을 퍼뜨리기 시작했고 `혹시 용산전자상가를 지나다가 할머니를 보면 음료수 사서 마실 돈 아껴서 할머니를 도웁시다'라는 운동이 통신가에 확산되고 있다.
현재 이 할머니가 계시는 곳은 용산 전철역에서 전자상가로 나가는 긴 통로로 할머니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네티즌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이용하는 방법이 날이 갈수록 창의적인 모습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불우이웃을 돕는 일은 그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벌어져 왔다. 동호회를 통해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걷는 방법을 쓰기도 하고 각종 이벤트를 통해 난치병 아이들을 돕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회원들이 적립해온 사이버머니를 기부금으로 쾌척할 경우 즉시 현금화해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실세계와 인터넷 세계가 적절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어우러진 이웃사랑 운동은 흔치 않다.
이런 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네티즌의 인터넷 사용 의식이 높아진 덕이랄까.
인터넷은 웹사이트로 구성된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인터넷 세상이 각종 사이버범죄로 물들고 불법 거래가 판치는 곳이 될지 아니면 이처럼 훈훈한 사람 냄새 나는 온정의 공간이 될 지는 결국 이곳에 사는 네티즌의 마음가짐으로 결정될 것이다.
[데일리클릭 보도국장 master＠dailyclic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