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현장르포] 별을 쫓는 아이들 '스타'
기사입력 2000년 04월 10일 14시 36분
스타(star).
대부분의 사람들이 되고 싶어한다.
그리고 스타의 주위엔 늘 유명세를 실감케 해주는 팬들이 있다.
팬과 스타는 어떻게 보면 톱니바퀴처럼 한몸인 셈.
이와관련 지난 4일 서울 양천경찰서는 L씨(48)를 검거했다.
L씨는 방송국간부를 사칭, 드라마에 출연시켜 주겠다며 꾀어 미성년자 등 10명의 여성과 60여차례에 걸쳐 성관계를 가졌다. 그가 유혹한 여성은 서울 신촌 커피숍에서 일하던 S여대생을 비롯해 연극배우, 여고 휴학생까지 끼어 있어 충격을 더했다.
무조건 스타와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일부 여성들과 이를 이용한 범죄행위가 맞아 떨어진 경우다. L씨 사건을 계기로 스타를 꿈꾸는 아이들과 연예인이 되는 길, 연예계의 단면을 짚어 봤다.
■스타의 추적자 10대
식목일 휴일을 앞둔 지난 4일.
서울 방배동 팔레스호텔 뒤쪽 주택가의 가요기획사 DSP사무실 앞. 이곳엔 인기그룹인 젝스키스, 핑클, 클릭-B가 소속돼 있다.
오후 10시가 다된 시간이었지만 50여명의 여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러다 기획사 문쪽에서 인기척이라도 나면 벌떼같이 몰려가곤 했다.
이들의 손엔 직접 만든 피켓과 플래카드, 앨범등이 들려 있었다. 만나려고 하는 그룹 멤버들은 신예 클릭-B. 라디오 출연을 앞두고 연습중인 클릭-B를 만나기 위해 벌써 5시간째 기획사 사무실 앞을 지키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이들중엔 인천, 심지어는 강원도 강릉에서 달려왔다는 여학생도 있었다. 취재진이 카메라를 가지고 접근하자 "도대체 무슨 목적이냐"며 몰아 세웠다.
이른바 `오빠부대'들로 불리는 이들은 자신들이 언론에 의해 `공부는 하지 않고 연예인 꽁무니만 따라 다니는 철부지'로 취급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인천에서 왔다는 중학교 3학년의 최수경양. "성적도 상위권에 들고 어머니한테도 말씀을 드리고 왔다"는 최양은 "어른들이 왜 이상한 눈으로만 보는지 모르겠다"며 논리를 갖춰 말했다. 또 한 여학생은 "어디 마땅히 놀데가 있나요. 콜라텍이라고 생긴 것도 다 어른들의 장삿속아니냐"고 반문했다.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묻자 아이들은 "좋은데 이유가 있어요?"하고 합창했다. 기획사의 한 직원이 "클릭-B 팬답게 행동하자"고 외치자 시장통속의 사람들 같았던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금세 조용해졌다. 아이들에겐 그들이 좋아하는 스타와 그룹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통제효과가 있었다. 과연 스타가 뭐길래.
■스타의 수난
스타가 있는 곳엔 어디든 팬이 몰린다. 그들의 목적이 순수하다고 볼수도 있지만 종종 도가 지나친 경우도 있다.
몰려 다니며 괴성을 지를뿐 아니라 기물파손까지 서슴치 않기 때문에 기획사 사무실이나 스타의 집 이웃주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한다.
`오빠 사랑해요'라는 벽 낙서는 기본. 밤샘을 하면서 배설물과 오물을 `처리'라는 통에 여름이면 아수라장이 되기도 한다.
96년 데뷔한 10대의 우상 H.O.T는 팬들의 등쌀에 이삿짐 보따리를 다섯번이나 쌌다. 주말이면 400여명의 팬들이 몰려드는 통에 주민들의 신고가 끊일 날이 없어 매니저들이 관할 파출소에 불려가는 날도 허다하다.
서울 방배동에서 한남동 유엔빌리지로, 흑석동에서 다시 방배동으로 쫓겨다니다 작년엔 압구정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새집 주소를 극비리에 부쳐도 어떻게든 알아내 미리 진치고 있는게 팬들이다. "진짜 귀신같다"는 게 매니저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작년 장우혁의 생일엔 방배동 일대가 교통이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자정이 넘도록 계속되는 소란에 경찰이 출동했을 정도. 지난달 문희준의 생일에도 그의 흑석동 집앞에는 4000여명의 팬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극성팬에 얽힌 일화는 무수하다. H.O.T가 방배동에 살던때 한번은 무단침입한 팬들이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를 `오빠들 것'이라며 몽땅 걷어가는 바람에 매니저들이 모두 `노팬티' 차림으로 외출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한 댄스그룹은 서울 변두리 모텔에서 합숙훈련을 하다 몰려든 팬들때문에 "손님 떨어진다"며 쫓겨난 적도 있고, 최수종-하희라는 인산인해를 이룬 엄청난 팬들 탓에 결혼식을 세번이나 했다. 인기탤런트 C양은 몇해전 한행사에서 경품추천을 하기 위해 몸을 숙이다 가슴이 드러나는 바람에 갖은 욕설을 받고 울먹이기까지 했다.
H.O.T의 경우 차 번호판은 차안에 달려있다. 팬들이 하도 번호판을 떼어가는 바람에 `다시는 안 만들어 주겠다'며 강남구청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이후 편법을 쓴 것이다.
젝키, 핑클의 소속사 매니저 길종화씨는 가출한 아이들을 수소문해 귀가시키는 것도 만만찮은 골칫거리라고 밝힌다.
모 매니저는 "표범보다 빠른게 애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들이 열광하는 이유
`클럽 H.O.T' 전국회장인 이경희씨. 서울 모대학 피아노과 3학년.
고2 때부터 시작한 H.O.T 사랑이 벌써 5년째다.
그녀는 전국 3만5000명 H.O.T 팬들을 총지휘한다. 지역별 회장만 16명. 이경희씨는 H.O.T가 가는 곳을 함께 다니며 힘을 실어주는 역할이 팬클럽에겐 가장 중요하다고 밝힌다.
간혹 광적인 팬들이 있지만 "좋아하는 표현의 방법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나쁘다고만 할수 없다"고 말한다. 스스로도 고교시절 가수 쫓아다니느라 공부 안한다는 얘기를 들을까봐 학교생활에 더욱 충실했다고 한다. 스타를 좋아하는 것은 일종의 서클활동과 같다는 것. 진정한 팬은 `우리가 잘못하면 H.O.T가 욕먹는다'는 책임감이 팽배해 있다고 한다. 이씨는 "청소년들이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표출하는 것"이라며 "팬들을 제발 나쁜 시각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팬들의 심리와 관련 정신과 전문의 김진씨는 청소년발달과정을 알아야 스타를 쫓는 아이들을 이해할수 있다고 밝힌다.
그는 부모에 의존하는 어린시절은 이상형도 부모고, 자신을 부모와 동일시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청소년기가 되면 부모가 평범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되며 이때는 친구 등 또래집단에서 그룹을 형성해 뭔가 일을 벌이고, 그룹 안에서 특별한 아이를 우상화한다고 분석한다. 스타를 동경하는 것은 자기만의 영역이 생기는 성인이 되기전에 거치는 하나의 정상적인 성장과정이라는 것이다.
■연예인이 되는 길
10대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인기스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가수, 탤런트 등 이른바 연예인이 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가수의 경우 기획사별로 정밀한 헌팅을 거쳐, 장기간의 교육을 받는게 통례다. H.O.T, S.E.S 등이 모두 그랬던 것을 보면 인기가수는 철저한 기획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탤런트 입문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보다 채널이 다양하고 공식적인 루트를 통한다. 각종 미인대회, 방송사의 공채, 각 기관과 개인이 운영하는 연기학원 등이다.
서울 여의도의 한국방송문화원 사무실. 13년된 이곳은 김희선 심은하 채림 안재욱 송윤아 등 현재 활약중인 많은 연예인을 배출해 낸 곳이다.
사무실을 찾은 시간은 평일 오후 4시쯤. 넓지않은 복도에 수십여명의 학부모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아이들의 연기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연기자가 되는 방법을 문의하러 온 여성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연예인 명함을 파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만큼 어렵다.
한국방송문화원만 하더라도 한해 2000여명의 지원자중에 `이름있는 연예인'이 되긴 10% 정도다. 하물며 스타가 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일 수 밖에 없다.
이와관련 한국방송문화원의 자회사인 mtm의 김민성대표의 말은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요즘 아이들 중엔 자기주장은 강하지만 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왜 연기를 하고, 하고 싶어 하는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매년 수천대 일의 경쟁률을 보이는 방송사의 공채기수 역시 일반사람이 알 정도로 유명해 지기는 쉽지 않다. PD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연기자를 각기 채용하기 때문에 일부에선 `방송사 공채라고 해서 특별한 메리트도 없다'고 말한다. 이 탓에 최근에는 공채기수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미인대회는 일단 외모하나는 보증된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가장 손쉽게 연예인의 길로 들어설수 있는 방법이다.
오현경 고현정 김혜리 김성령 이승연 등 미인대회 출신 톱스타들이 많은 것도 그 이유다.
■연예인이 뭐길래
연예인 발굴과 육성은 `벤처사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부분의 기획사 매니저들. 이들은 최근에도 서울과 지방의 예고, 서울 강남의 나이트클럽과 `물좋다는' 카페들을 시간만 있으면 탐문하고 다닌다.
그는 그곳에서 몸매와 얼굴이 좋은 사람을 골라 명함을 건네주고 오디션을 제의한다. 물론 개성있고 신선한 마스크를 찾기위해서다.
현재 활약중인 연예인들 가운데는 카페나, 미용실, 또는 길거리에서 CF감독이나 잡지의 모델로 픽업된 경우도 허다하다. 이정재 구본승 등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연예인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배용준 이휘재 등도 영화, 방송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하다 발탁됐다.
심지어 가수 S군처럼 호스트바 출신도 있고, L, P양처럼 룸살롱에서 시중을 들다 브라운관으로 뛰어든 케이스도 있다.
과거야 문제삼을 필요가 없겠지만 이런 `길거리 헌팅'은 간혹 적잖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바로 방송국간부를 사칭한 L씨 같은 사람이 나타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탤런트 정준호 윤용현의 매니저인 민엔터테인먼트 손성민사장.
요즘도 종종 헌팅을 한다는 그는 "명함을 주면 절반 이상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픽업의 대상은 `느낌'이다. 헌팅은 물론 뉴페이스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KBS 드라마에 등장중인 신세대 인기탤런트 K양도 그가 몇해전 길에서 우연히 픽업한 경우다.
매니저들이 헌팅에 나서기도 하지만 직접 기획사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다. 압구정동 모매니지먼트사의 H실장은 얼마전 "시키면 뭐든지 하겠다"며 막무가내로 연예인이 되겠다고 찾아온 20대 여성때문에 하루종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가수를 화려하게 빛내주는 백댄서들도 청소년들의 희망직종이다. 강남 댄스학원들의 수강생 수는 대부분 가파른 증가추세다.
하지만 무대에 서기 위해선 고된 훈련을 이겨내야 한다. 통상 5~10% 정도만이 1년을 넘게 견딘다는게 관계자들의 말.
강남 한학원에서 만난 강성현군(21). 1년간 학원에 다니다 백댄싱팀에 들어간 그는 학교보다 춤이 좋아 휴학까지 했다.
H.O.T의 강타와 장우혁, 최장민, 클론, 듀스, 김완선 등 백댄서 출신 인기가수는 손으로 꼽지 못할 정도로 많다.
백댄서 지망생들이 대부분 가수의 꿈을 갖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예인의 빛과 그림자
연예인의 실상은 화려하지만은 않다.
현재 한국방송연기자협회에 가입된 연기자는 1335명(남자 785명). 가수 등 비가입자를 포함하면 총 연예인의 수는 훨씬 늘어난다.
하지만 이른바 스타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탤런트의 경우 방송출연료만 해도 천차만별이다.
방송사의 경우 60분물 기준 성인 최저등급인 6등급은 20만원 안팎, 최고인 18등급은 100만원 내외다.
즉 6등급 탤런트의 경우 한달 8회 방송되는 미니시리즈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할 경우 월수입은 160만원인 셈.
자동차 유지비, 미용료 등을 합치면 실제 수입은 얼마되지 않는 셈이다. 등급이 아닌 계약으로 한달 1500만원 이상을 버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소수일 뿐이다.
매니지먼트사 스타연방의 김대억사장은 "탤런트 한명을 보유할 경우 한달에 200만~400만원의 경비가 든다"고 말한다.
기획사마다 다르지만 코디비 60만원, 로드매니저 월급 80만~100만원, 차량유지비 식대 등 기타 진행비 200만~300만원 정도가 든다. 결국 신인의 경우 매니저 입장에서 봐도 출연료 하나만으로는 밑지는 장사인 셈이다.
운좋게 캐스팅이 됐더라도 연기가 미숙한 걸로 판명나면 여간해서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중견연기자들의 경우 모두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눈여겨 볼 점이다.
스타 대열에 들어서더라도 불법행위나 간통등 추잡한 스캔들에 휘말리면 인기는 그날로 곤두박질친다. 스타가 되는 순간, 그들의 사생활은 팬과 여론의 철저한 관찰대상이다.
요즘에는 인터넷에 누드합성사진까지 실리는 마당이니 스타의 애로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왜 인기연예인을 육성하려고 하고, 되려고 할까.
매니저들은 누구나 "한번 터지면…"을 입버릇처럼 말한다.
가수는 물론이고 탤런트도 `잘만 뜨면' TV CF와 각종 모델료로 1년에 10억원은 족히 챙길수 있다고 말한다.
연예인 당사자들에게도 인기와 함께 얻는 명예는 돈으로 따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매니저들은 신인의 경우 수익을 5:5 정도로 나누기로 하고 다년간의 장기계약을 맺는게 보통이다. 매니저들에게 연예인은 상품이다. 수천만원을 들여 성형수술을 시켜주기도 하고, 일부는 캐스팅을 위해 향응까지 베풀다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심지어 "XXX는 몸까지 바쳤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나돌기도 한다.
소속연기자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으로 이적하려 할 경우엔 종종 법정 싸움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모 연예기획사의 사장은 "연예인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 몸과 정신이 모두 피폐해 진다"며 연예계의 험란한 노정을 표현한다.
■취재후기
연예인의 위상은 과거와는 훨씬 달라졌다.
TV 인터넷 등 매체의 발달과 인식의 전환으로 대중의 우상이자 명사로 떠오른지 오래다.
이들중엔 많은 사람들이 공인의 신분에 걸맞는 모범을 보이고 있고, 소수이긴 하지만 1년에 수십억원을 벌어들이기도 한다.
스타가 될 기회도 넓어졌다. 기술과 마케팅 등의 발달로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가령 가창력이 좀 부족해도 외모와 댄스실력, 컴퓨터효과로 얼마든지 인기가수로 급부상하는게 요즘의 현실이다.
이때문에 일부에선 상혼에 급급해 `엉터리 스타'를 대량 탄생시킨다는 비난도 있다.
매사가 그렇듯 화려한 연예계 이면에는 그림자도 짙다.
성공하는 사람보단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많고,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그 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도전해볼 만하지 않는가.
또 누군가를 대상으로 희망을 삼고,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해야 하는게 성인들의 책임이라는 판단이다.
[SC 현장 르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