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혼란스러운 일본정국
기사입력 2000년 04월 09일 14시 24분
요즘 일본인들의 마음은 몹시 불안하다. 아니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20년동안 일본을 왔다갔다하며 장기체류도 해봤지만 요즘처럼 일본정국이 어수선한 적은 없었다. 언젠가 전철역의 건물이 뒤흔들릴 정도의 강한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이렇진 않았다. 그 땐 단지 전철운행만 몇 시간 지연됐을 뿐이다.
현재 겉으로 드러난 일본의 정치체제와 경제시스템은 평온해 보이나 일반국민들은 불안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후카이도의 화산폭발, 오부치수상의 혼수상태, 새로운 내각탄생, 최악의 실업률, 연일 터지는 경찰들의 불미스런 일 등….
하지만 이같은 불안의 조짐은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도처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작년말 일본황실의 대를 잇고 침체된 경제가 활성화될거라는 믿음에 기쁨에 들떠 반겨했던 마사코황태자비의 임신소식. 새천년 밀레니엄 왕자탄생이라고 일본열도가 흥분했을만큼 일본열도를 휩쓴 빅뉴스였던 황태자비의 임신은,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산'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막을 내렸다. 마사코비는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 국화무늬가 그려진 황실커텐 속으로 꼭꼭 숨어버렸다.
그리고 연이어 터진 경찰들의 불미스러운 사건들.
피해자 협박, 성희롱, 조서은폐, 근무태만 등이 탄로나 문제가 됐지만 서로 경찰관끼리 덮어주다 결국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돼 전국이 들끓게한 사건. 문제의 경찰들은 물론 그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간부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곧이어 발각된 니카타 경찰관들의 용서못할 공무거부 행위. 이미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10세 소녀를 납치하여 9년 2개월동안 감금한 이 사건은 일본의 전국민들을 전율케 했다. 특히 일본국민들이 분노를 터뜨린 것은 범인도 범인이지만 민중의 지팡이라고 하늘같이 믿고 있었던 경찰관이었다. 4년전과 2년전에도 범인의 어머니로부터 아들의 폭행신고를 받고서도 경찰은 형식적인 조서작성만으로 수사를 종결시켰던 것은 물론, 범인의 과거전력조차도 무시했다. 그 범인은 이미 사건 전에 어린 여자아이를 납치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전과가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 범인을 아예 용의자선상에 올려놓지도 않았었다.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경찰관들의 수사소홀로, 피해소녀는 무려 9년 2개월동안 화장실도 없는 다다미 6조짜리 방에서 하루 한끼니의 식사와 방에서 소대변을 보는 등 생지옥같은 생활을 보내야 했다. 뿐만 아니라 9년여동안 단 한번도 바깥외출을 하지 못했다. 도망치려하면 사정없이 폭행을 가하거나 칼을 들고 협박을 하기가 일쑤였다. 또한 범인이 외출할 때는 밖에서 문을 잠가놓아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을 갈 수가 없었다.
때문에 보건소의 직원이 발견했을 때는 10세의 어린이가 19세의 소녀로 성장해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피해 소녀는 걸음조차 제대로 걷지 못했다고 한다. 9년 동안 햇볕을 한 번도 쐬인 적이 없는 소녀의 하얗다 못해 파릇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문제는 경찰이었다. 보건소 직원이 경찰에 전화를 해 `이상한 여자가 있으니 빨리 오라'고 하자, 경찰은 대뜸 `그럴 시간이 어디있냐, 우린 지금 바쁘니 당신들이 알아서 해라'는 말을 하면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보@@소 직원들은 사태의 심각성 때문에 또다시 경찰에 전화를 걸어 빠리 좀 와 달라고 사정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차를 불러 소녀를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소녀의 신분이 밝혀졌음은 물론이다. 그 때서야 마지못해 병원에 도착한 경찰들은 문제의 소녀가 9년전에 납치돼 행방불명된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고는 뒤늦게 그녀의 부모에게 연락을 하는 등 법석을 떨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의 한심한 행동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0세 된 여자아이가 하교길에 한 남자에게 납치돼 무려 9년 2개월동안이나 골방에 감금됐다 구출된 그날 그 지역 책임자인 니카타 경찰서장은 본청에서 감사를 나온 간부와 함께 온천의 한 호텔에서 목욕을 즐기며 마작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납치소녀에 대한 소식은 전화를 보고를 받아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호텔에서 꿈쩍않고 밤새도록 자신을 감사하러 나온 사람과 함께 접대용 마작을 즐겼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