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일본남자들 본모습
기사입력 2000년 04월 03일 14시 14분
몇 년 전 재일동포 교수가 소개해준 25세의 두 일본남자.
소개받을 당시에는 게이오대학 4학년생이었는데 지금은 각각 미츠비시 상사와 운수회사에 근무하는 준수한 일본청년들인 구리하라와 이케가미다.
내가 일본유학을 오기 전에는 한국의 진짜 갈비가 먹고 싶다고 일부러 서울까지 온 적이 있었다. 그 정도로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이 두사람은 그러나 한일관계 역사에 대해서는 백지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일본학교에서는 역사에 대해서, 특히 일본이 침략했던 아시아 나라들에 대해서는 교육을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일간의 역사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본교과서 문제가 현안으로 제기되곤 하지만 현재까지 진전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미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극우학자들의 입지가 더 강화됐다. 그것은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일본정부당국이 제재는 커녕 은근히 이들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관료 중에도 식민사관을 가진 이들이 많은 요직을 차지하고 있어 왜곡된 일본교과서를 바로 잡으라고 하는 것은 소귀에 경을 읽는거나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세계 요리 중 한국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좋아하면서도 정작 자국이 저지른 한일관계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한 이 두 청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작년 12월 초 시내에서 만난 뒤의 안부를 묻는 전화였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별로 안녕하지 못하다고, 그랬더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찬호와 얼굴생김새가 비슷한 구리하라가 깜짝 놀라면서 무슨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일본에 대해 공부하러 와서 다른 분야는 그런데로 알겠는데 도대체 일본의 젊은 남자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그렇게 해서 드디어 우리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주 토요일, 한국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일본의 젊은이들과 밤새워가며 토론을 했다.
구라하시와 이케가와는 일본에서 전형적인 상류층 자제들. 이를테면 뼈대있는 가문의 아들로서 아버지가 경제인이기도 한 부잣집 아들들이다. 때문에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 5∼6년씩 살았고 방학 때는 프랑스와 러시아 등 언어연수를 다녔다. 특히 구리하라의 집안은 아들이 만나는 사람을 일일이 체크하여 교제상대를 정해 줄 만큼 가정 교육이 엄격하다. 반대로 이케가미는 자주 외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서구식 사고방식을 가진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유분방하면서도 자기 용돈은 자기가 벌어 쓸만큼 독립적으로 자랐더 .
그래선지 사회생활 2년째인 두 젊은이의 성향이 아주 재미있었다. 구리하라는 히로라는 지역에서 가장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유명한 재력가 집안의 외아들. 그런만큼 여자친구도 많은데 최근에 실연을 당했다고 입이 석 자는 나와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케가미가 놀려댔다. 실연한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구리하라는 완벽주의자였다. 뭐든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움직인다. 뭐든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움직인다. 가령 데이트를 할 때도 차와 목적지가 정해진 상태에서 데이트를 어떻게 할 것인가 미리 정해 놓은 다음에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때문에 성격이 차분한 구리하라에게 있어 돌발적인 행동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반면 이케가미는 준비된 데이트도 좋지만 즉흥적으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으면 여자친구와 함께 훌쩍 떠나는 로맨틱함도 필요하다는 지극히 남성적인 성격의 젊은이다. 그런 그가 구리하라를 향해서 여자에게 채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공격을 해댄 것이다. 한술 더 떠 이케가미는 그래서 일본남자들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케가미의 예기를 듣고 내가 지나가는 말투로 슬쩍 한 마디를 던졌다.
"그래서 일본여자들이 박력있는 한국남자를 좋아하나?"
그러자 이케가미가 손뼉을 치며 바로 그거라고 동의를 했다.
"야, 구리하라! 일본인들, 특히 조직 속에 속해 있는 우리같은 샐러리맨 남자들은 모두 너같아서 안돼, 어떻게 남녀의 감정까지도 계산해서 준비한 다음에 사랑을 하느냐구. 그래, 넌 섹스를 할 때도 머릿속에 미리 계산하고 하냐?"
그러자 표정하나 달라지지 않고 구리하라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일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