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카사노바] 가짜 검사 (9)
기사입력 2000년 04월 02일 15시 31분
그러던 어느날. 김인석은 오랜만에 시골집에 다녀오기 위해 경부선 열차를 탔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법률 서적이 한권 들려있었다. 헌팅을 할때 늘상 들고 다니는 책이어서 손때가 많이 묻어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 책을 펴들고 읽는척 하는데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말을 건넸다.
"혹시 법을 전공하세요?"
김인석은 책을 덮으며 시선을 그녀에게 돌렸다. 30세쯤 돼 보이는 세련된 미시였다. 예쁘고 탄력있는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네, 그런데요."
"법조계에 계시나요?"
"네, 검사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왜 그러시죠?"
"뭐 좀 여쭤 보고 싶은게 있어서요."
"말씀하시죠."
그녀는 장옥경(31．가명). 장옥경은 사연을 털어놓았다.
사업하는 남편과 여유있는 생활을 해왔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남편의 회사가 부도나고 집에는 차압딱지가 붙여지고 남편은 어디론가 피해버렸다. 그랬던 남편이 대전에서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가는 길이었다.
울먹이며 말하는 장옥경은 애처로워 보였다. 그러나 카사노바의 눈엔 오히려 섹시해보였다. 군침이 돌았다.
"초범입니까?"
"네."
"하지만 부도사건은 피해자가 있어서 합의를 해야 풀려날 수 있습니다."
"그보다 찾아가면 만날 수는 있을까요?"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검사님은 어디까지 가세요?"
"저도 대전까지 갑니다. 동기생이 상을 당했거든요."
김인석은 김천까지 가지만 흑심이 동해 대전에서 따라 내릴 작정으로 거짓말을 했다.
"검사님께서 좀 도와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가능이야 하겠지만 검사가 그런 일에까지 나서기는 곤란하지요."
"검사님,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어떻게 좀 도와주세요. 그리고 우리 남편 좀 구해주세요."
"사정이 딱하시니 도와드리겠습니다만 우선 이렇게 합시다."
김인석은 대전지검에도 동기생들이 여럿 있다며 그럴듯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우선 장옥경이 면회를 신청해보고 면회가 되든 안되든 저녁에 만나자고 했다. 면회가 되거든 남편의 정황을 살펴보고 알려주면 힘을 써 주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둘은 대전 시내 중심가인 은행동의 한 커피숍에서 다시 만났다.
"어떻게 됐습니까?"
"면회를 하기는 했어요."
"그래서요."
장옥경은 울음을 터뜨렸다. 초췌한 모습으로 보호실에 갇혀 있는 남편의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진정하세요. 제가 힘을 써 볼게요. 마침 오늘 상가에 대전지검에 있는 동기생이 왔더군요."
"검사님, 제발 우리 남편 좀 구해주세요."
"방법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죠?"
김인석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여기서는 남들의 눈이 있어 얘기하기 곤란하니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깁시다"며 미리 얻어놓은 호텔로 데리고 갔다.
"정말 남편을 구해주시는거죠?"
"글쎄, 저도 안 해본 일이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부탁하면 가능할 겁니다."
김인석은 장옥경으로부터 교제비 명목으로 100만원을 받아냈다. 그리고 계속 흐느끼며 애원하는 장옥경을 위로하듯 등을 두들겨주다 껴안아 버렸다.
장옥경은 바둥거리며 저항했지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남편을 구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검사라는 이 남자를 따라 호텔방에 들어온게 실수였다. 눈물을 흘리며 당하면서도 `옥에 갇힌 남편을 구하기 위해 사또에게 자신이나 어린 딸을 바쳤다는 옛이야기가 많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라도 남편만 구할 수 있다면'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