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조영남 '감회에 젖는 오스카 시상식'
기사입력 2000년 03월 31일 17시 39분
"여러분! 방금 전달받은 소식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셨답니다."
누군가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장소가 바로 미국 LA 슈라인 오디토리움이었다.
나와 몇몇 가수 일행은 LA교민초청 공연차 서울에서 비행기로 날라와 막 리허설을 시작하려던 순간이었다. 거기가 엊그제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이 열린 바로 그 장소였다.
박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는 순간 우리의 몸체와 두뇌의 작동은 한참이나 올 스톱 상태가 되었다. 이때 내가 정신을 차리고 수습에 나섰다.
"여러분 우리 조국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그때 나는 미국에서 막 신학공부를 마쳤을 때였고 지금은 딴판이지만 그때는 기도를 올려도 제법 어울려 보일 때였다.
그런 요상한 에피소드 덕분인지 거기 슈라인 오디토리움에서 매년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TV중계로 볼 때마다 나는 묘한 감회에 젖곤 했다.
그러면서 짬짬이 중얼거렸다.
"야! 이놈들아, 까불지 마라. 나도 그 무대에 여러번 섰었다. 이놈들아!" 운운하면서 말이다.
아! 오스카 수상식은 정녕 화려찬란했다. 빌어먹을 수상식 이름이 오스카와 아카데미로 두개씩이나 돼서 자꾸 헷갈린다.
단골 MC 빌리 크리스탈의 오프닝 축하노래는 나같은 얼치기 한국가수의 앞발 뒷발을 다 들게 만들었다. 그건 따로 만들어진 1회용 창작곡이었다. 다섯개의 금년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관련된 노래였다.
그 어려운 재즈풍의 노래를 박자 음정 한 군데 안 틀리고 불려 제쳤다. 단순한 코미디언 MC가 말이다. 이건 그냥 건성 엄살떠는게 아니다.
그런 노랠 날더러 와서 부르라고 해도 나는 못 부른다. 노 땡큐다. 내 경우 그런 노랠 배우는 데만 3개월 정도 거릴 것이고, 가령 임백천같은 경우 자기 말로 지가 한국 1위 MC라고 그러는데 그정도 노랠 익히려면 적어도 3년은 넘게 걸려야 한다.
그 심플한 무대세트, 착 가라 앉은 조명들, 화려한 턱시도와 드레스 차림의 참가자들. 그건 영국 블란서 독일 이탈리아에선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미국만의 잔치, 미국만의 쇼였다.
나는 그걸 보면서 괜히 심통이 나서 "야! 이놈들아, 나도 그 무대에 섰다" 어쩌구 해가며 투덜댄 거다.
슈라인 오디토리움은 또 문제가 아니다. 나는 거기보다 더 유명한 세계 최고의 공연장 뉴욕의 카네기 홀에도 서 봤다. 혼자서 두시간 씩이나 카네기 홀 메인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불렀었다.
그 유명한 흑인가수 해리 벨라폰테가 노래했던 바로 그 카네기 홀에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한수 더 떴다.
"야! 양키놈들아, 니네들 중에 카네기 메인 홀에 두시간 이상 올라섰던 작자가 몇명있냐? 나와봐라!"
내 방구석에 벌렁 누워서 나 혼자 큰소리 뻥뻥치니 말리는 사람이 없어 영 좋았다.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