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석] 이름만 남은 '선발예고제'
기사입력 2000년 03월 31일 13시 50분
한동안 잊고 있었던 `깜짝선발', `깜짝오더'라는 말을 다시 듣게 생겼다.
8개구단 감독들은 30일 간담회에서 최근 2년동안 의무적으로 시행하던 선발투수 예고제를 올해는 구단자율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허울뿐인 제도가 된 셈이다.
선발투수가 부족한 일부 구단이 "선수난이 심한 국내 여건에선 시기상조며 관중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논리로 밀어붙인 결과였다. 흥미저하? 그럴듯하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기겠다'는 승리 지상주의가 숨어있다.
선발투수 예고제는 지난 97년까지 일부 구단사이에서 시행되다 98년부터 의무사항이 됐었다. 선발이 예고되면서 타선은 상대 선발에 맞춰 짜여졌고 그만큼 경기수준도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깜짝선발'이 횡행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승리팀 감독에겐 탁월한 용병술이니 지략가니 하는 칭찬이 쏟아지겠지만 선수교체가 빈번해져 자칫 맥빠진 경기가 될 소지가 많다.
더욱이 선수보호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등판간격이 일정한 상태선 선수 스스로 컨디션 조절과 타자를 분석할 시간이 있지만 예정에 없는 등판은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을 가능성이 높다.
선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컨디션이 나쁘면 출전을 기피하는 선수가 나타날테고, 약삭빠른 선수는 입맛에 맞는 팀을 고르기 위해 꾀를 피울 수도 있다.
특히 엔트리 재등록 시한이 10일로 정해져 있어 요즘은 사소한 부상을 입어도 2군에 내려갈 수 없는 상황. 특정 투수만 혹사를 당할게 불보듯 뻔하다.
팬서비스는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다. 경기는 감독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의 몫이다. 선발투수 예고제가 그나마 구단자율에 맡겨져 다행이다. 무엇이 진정한 팬서비스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다.
[권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