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카사노바] 가짜 검사 (5)
기사입력 2000년 03월 30일 17시 21분
김인석은 그 뒤 이미영으로 부터 실습비, 회식비 등의 명목으로 목돈을 계속 뜯어냈다. 그러면서 새로운 상대 물색에 나섰다. 비록 가짜지만 신분증까지 지닌 어엿한 사법연수원생이 됐으니 다른 여자들에게도 한번 써벅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 것이다.
그러던중 우연히 길에서 정민숙(25.가명)을 만났다. 김인석이 서적 외판원을 하던 시절 월부책을 팔아줬던 무역회사원이다. 정민숙은 무역회사원에 근무하면서 대학원에 다닌는 학구파였다.
"안녕하세요. 절 알아보시겠습니까?"
정민숙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이석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생각이 난 듯 "아,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받았다.
"지금도 회사에 계속 계시지요?"
"네, 그런데 지금은 그 일 안하세요?"
"네 그만둔지 꽤 됐습니다. 아참 정민숙씨한테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 시간이 있으시면 차라도 한잔 하실 수 있을까요? 잠깐이면 됩니다."
정민숙은 시간을 들여다 보더니 "오래 걸리지 않지요"하면서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지금은 그래 뭐하세요?"
"네, 사실 저, 그때 공부하고 있었어요. 지금은 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있어요"
"어머 그러세요? 정말 훌륭하세요"
정민숙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월부책 팔러 다니던 사람이 사법연수원생이 됐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사람 아무렇게나 볼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제게 물어보실 말씀은…?"
"지금도 대학원에 다니세요?"
"네 아직 못 마쳤어요."
"그때 보니까 컴퓨터도 잘 다루시던데, 제가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이렇게 훌륭한 남자가 나같은 여자에게 부탁할 게 다 있다니' 정민숙은 궁금했다.
"뭔데요?"
"좀 어려운 부탁인데.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보니 사시 준비 때보다 더 바빠요. 그래서 부탁인데 제 논문 정리 좀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저는 그 분야에 맹탕인데, 감히 그 어려운 논문을…."
"아, 그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원고는 제가 써 놓았는데 교정을 보고 디스켓에 저장해주시면 됩니다."
정민숙은 자신 없다고 몇번 사양하다 해준다고 대답했다. 사법연수원생들의 논문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도 궁금했지만 그보다 이처럼 훌륭한 수재의 일을 도돠준다는게 영광스러다는 생각이 앞섰다.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며칠 잇다 연락을 드릴께요"
며칠 뒤 김인석은 '간통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 한편을 구해 정민숙을 찾아갔다. 논문은 그가 근무했던 도장포와 함께 있는 인쇄소에서 구했다. 인쇄 의뢰 들어 온 것을 복사한 것이다.
김인석은 정민숙이 회사 부근 카페에서 만나 보자기에 싼 원고 뭉치를 내놓았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해주시면 제가 한턱 내겠습니다."
정민숙은 원고를 훑어보았으나 어려운 법률용어들이 많아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문맥은 잘 다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해보겠어요. 그런데 언제까지 해야 되지요?"
"한달 안에만 해주시면 됩니다."
김인석은 이것을 빌미로 이따금 정민숙을 찾아가 차도 대접하고 식사도 대접했다. 주말엔 극장구경도 시켜줬다. 그러는 사이에 둘은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데이트 비용은 모두 이미영이 조달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