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 감독 '인류애 담은 따뜻한 작품 만들고 싶다'
기사입력 2000년 03월 30일 14시 55분
영화감독 겸 제작자 강제규(39). 호남형의 연기파 배우같이 잘 생긴 그의 눈빛은 살아있다.
`쉬리'란 영화로 전국을 떠들썩하게하고 지금은 일본 열도를 `쉬리' 열풍으로 몰아넣고 있는 그의 선굵은 얼굴에 섬세함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삶과 영화에 대한 강한 에너지가 은근하게 배어 나온다. 그 에너지는 강제규 만의 힘이다.
그 힘은 관객들을 들뜨게 만든다. `쉬리'로 만들어진 그와 그의 영화사에 대한 기대감은 어떤 수치로도 말할수 없다. 그는 아마도 꿈을 잃어버린, 신화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다시금 꿈과 신화를 일깨워 주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지 모른다.
어떤 예술장르 든 기초가 튼튼하면 형식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기초 없이 감각의 제국을 건설하려는 자들은 비애를 맛보기 마련이다. 그러나 강제규는 현장과 이론을 두로 섭렵하면서 밑바닥에서 부터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의 뚝심은 바로 눈물겨운 밥을 먹으면서 꿈을 잃지 않는 희망의 길찾기에서 찾아질 수 있다. 그의 길찾기는 좋은영화만들기였으며 그 좋은 영화는 관객들에게 특별한 재미와 의미를 부여할수 있는 영화였다. 그리고 그는 꿈꾼다. 영화본산인 할리우드에 한국영화를 심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사진찍기에 매료되었으며 주말마다 부산에가서 영화를 보고 마지막 시외버스를 타고 마산으로 돌아오곤 했다. 대학시절엔 충무로에서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보냈다.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등으로 활동하다 `은행나무 침대'로 일격을 가하더니 `쉬리'로 한국영화사를 다시 썼다.
영화가 인간이라는 본질을 담는 것이라면 그것을 보러오는 관객들이 느낄수 있는 극장과 영화의 오락적 기능도 본질과 동궤를 이룬다는 강제규는 시민영화주의자인지도 모른다. 일상이 지배하는 현대인들에게 특별한 느낌과 감동 그것을 통해 이상세계로 여행을 유도하는 안내자인 것이다.
최근 제주도 촬영을 끝낸 `단적비연수'의 제작이 순조롭지만 제작비가 많이 들어 걱정이라는 강제규. 목련의 꽃잎이 세상밖으로 얼굴을 내밀려는 봄날, 인류애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그를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년시절의 꿈은?
▲호수같은 마산 앞바다를 가슴에 안고 살았어요. 어린 시절 화가나 건축가가 되고 싶었어요. 누이가 그림을 그린 것 말고는 집안에 예술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제가 영화를 하게 된 것은 집안의 역사로 볼때 돌연변이나 마찬가지에요.
-영화를 하게 된 동기는?
▲부친께서 사진을 찍는 것을 즐기셨죠.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게 됐어요. 고등학교 때 교환렌즈를 쓸수 있는 니콘F 카메라를 갖고 있었어요. 일상 적인 눈으로 보는 세상과 사물하고, 사각의 틀 속에서 바라보는 사물과 현상은 무척 달랐어요. 그 물상(物像)은 다른세상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고등학교 시절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 많이 봤죠.(웃음) 부산만 서울과 동시개봉 할때라 주말마다 부산가서 영화보고 막차타고 마산으로 돌아오곤 했죠. `시네마 천국'의 토토 같은 꿈을 꾼 시절이었죠.
-대학시절(중앙대 연영과)을 회상하면?
▲영화연출을 전공했죠. 학교보다는 충무로에서 살았어요. 단편영화 시나리오 쓰고 촬영하고 선배가 만든 영화 편집하는 일이 전부였죠. 단편영화란 영화의 속성을 고대로 간직한 장르에요. 극영화부터 시작하는 것 보다 단편영화를 통해 영화의 본질을 깨우친 이 시절이 제겐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죠. 대학 4년을 거의 충무로에서 보냈는데 다행히 학교 성적은 좋았어요.(웃음)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손톱' `올가미' 등을 만든 김성홍 감독과 영화이야기 많이하고 같이 영화세상을 꿈꿨어요. 마산고와 대학선배여서 더욱 친근미도 있었구요. 영화에 대한 관점, 세상에 대한 시각, 현실에 대한 인식 등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도움도 많이 됐어요.
-가족은?
▲아내(박성미．탤런트)와 아들(윤원)이 있어요. 아무리 바빠도 일요일만큼은 가족과 지내려고 해요.
-남다른 연애시절을 보냈다는데?
▲충무로에서 같이 영화를 만들었죠. 영화를 같이 하는 친구로 만날때는 부담이 없었는데 막상 결혼을 하려니 먹고 사는게 걱정됐어요. 영화에 미쳐 있었는데 처음 대학 입학할때 들어간 전셋돈 200만원이 결국은 졸업할 때 제로가 되더군요. 전셋돈 까먹으면서 단편영화 만든 셈이죠.
-아내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아내한테 미안한 게 많아요. 서울 흑석동에 이사를 가는데 비가 억수처럼 내렸어요. 두사람이 마주치면 부딪칠 정도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 3층에 있는 전셋방으로 이사를 갔어요. 이삿짐을 방에 옮겨 놓고 집사람을 찾았는데 안보이는 거에요. 찾아보니 처마 밑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거에요. 참 할말이 없더군요.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때는?
▲대학 시절 한겨울에 웃풍이 센 집에 살았죠. 어느날 연탄불 마저 꺼진거에요. 그래서 전기스탠드를 켜서 그 온기로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스탠드를 안고 잤어요, 그런데 꿈속에 방안이 연기로 자욱한 거에요. 잠을 깨보니 이불 솜에 불이 붙어 조금씩 타들어 가고 있었어요. 가스에 질식해 일어서면 쓰러지고 일어서면 쓰러지고…(잠시 사이) 그런 세월이 있었죠.
-좋은 배우는 어떤 배우인가?
▲해체돼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자아가 강하면서도 자기가 없는 것 같은 사람이 배우 같아요.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막을 치고 있는 사람은 제가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에요. 평생동안 모노드라마를 하는 듯한 배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을 해체하고 허물을 벗어가는 배우가 좋아요.
-실명을 영화사 사명으로 쓴 이유는?
▲개인적으로 부담이 커요. 제가 감독을 한 영화가 아니라도 엄청난 책임감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죠. 방만해지거나 긴장이 풀어질때 제 자신과 영화사를 제어하는 장치가 되요.
-음식은 무얼 좋아하나?
▲한국음식예찬론자에요. 평소 먹는 것을 가리진 않아요. 생선 매운탕, 김치국밥을 좋아해요.
-영화 이외의 특별히 관심을 갖는 부문은?
▲여행을 좋아해요. 자주는 못가지만 가능한 시간을 내려고 하죠. 여행은 새로운 물상과 상황을 인식하는 삶의 에너지를 제공해요. 또 창작욕구를 느끼게 만들어주죠. 새로운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각, 청각적인 경험을 갖게 돼죠. 그것은 인생과 영화에 영감이 됩니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인종, 관습, 종교를 초월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지구상에는 200여개의 국가가 존재하죠. 그런 구분말고 인류적인 것에 더 관심이 많아요. 인간의 본질은 하나이고 그 하나를 위한 영화 즉 인간(인류)의 보편성을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그때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인지도 몰라요.
-`쉬리'가 일본 영화가의 화제인데?
▲이달 30일로 일본관객 100만명이 `쉬리'를 보았어요. 일본 영화도 50만명을 넘기 어려운데 한국영화가 일본에서 100만명을 끌어 모은 것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오는 4월 7일 도쿄에서 100만명 돌파 기념으로 일본 영화계, 문화계 인사들을 초청, 기념파티를 열 생각입니다.
-`쉬리'로 번 국내외 총 수입은?
▲메인 개봉관 종영까지 공식적으로 586만명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상영한 것까지 포함하면 600만명입니다. 국내와 외국 판매액까지 포함하면 총 매출액은 200∼250억원정도 되는 것 같아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쉬리'의 자산적인 가치는 2000억원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할리우드 진출계획은?
▲분명히 진출해야죠. 어떻게 진출할 것인가가 문제죠. 할리우드 시장 공략도 한 진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아시아 영화가 미국시장을 공략했단 기록을 세우고 싶어요. 연출은 그 다음 문제인것 같아요. 분명한 것은 진출해야한다는 것이죠.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영화의 경쟁상대는 연 300여편씩 들어오는 외국영화죠. 영화계의 신구갈등, 기득권 고수를 위한 경쟁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이제 우리 영화의 시장은 국내 뿐만 아니라 외국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해요. 보다 멀리 그리고 크게 그림을 그려야한다고 생각해요.
-강제규 감독은? 1962년 마산 생. 마산고 졸업, 중앙대에서 연극영화 전공. 시나리오 `쉬리' `은행나무 침대'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장미의 나날' 등. 연출작품 `국화' `13인의 피' `은행나무 침대' `쉬리'. 수상경력 한국시나리오 대상(91) 대종상영화제 신인감독상(96)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96) 백상예술대상 작품상(99) 청룡영화상 감독상(99).
[박용재 문화부장 east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