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있는 씨네마 세상 '자동차 천국'
기사입력 2000년 03월 30일 14시 38분
천막극장이란 게 있었다. 시골 빈터에 대충 가건물을 지어놓고, 흘러간 영화를 보여주던 야외 극장이었다. 비록 화면엔 `비'가 주룩주룩 내렸지만, 그 재미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땅바닥에 엉덩이 깔고 앉아,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봤다.
요즘도 야외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 바로 자동차극장이다. `드라이브 인 시어터'란 말 그대로, 자동차를 탄 채 영화를 관람하는 극장이다. 물론 60, 70년대 천막극장과는 수준이 천양지차다.
자동차극장이 주말 레저문화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자동차가 보편화되면서 생긴 새로운 풍속도다. 야외 나들이도 하고, 영화도 볼 수 있어 일석이조다. 보통 평일 100대, 주말 300대 정도가 들어찬다.
지난주 일요일 경기도 양평의 `드라이브 인 양평극장'을 찾은 대학생 박소영씨(21). 서울에서 양평까지 남자친구와 드라이브를 즐기고, 주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후 이곳에 왔다. "자동차 안에서 영화를 본다는 게 신기해요. 분위기도 좋구요." 옆의 남자친구도 고개를 끄덕인다.
자동차극장은 이처럼 젊은 연인들의 낭만적인 데이트 코스로 인기다. 화면이 일반 극장만큼 선명하지 않지만, 이들에겐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 안에 있으면, 프라이버시가 완벽하게 보장된다. 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담배를 피워도, 껌을 씹어도 된다. 대화를 나눠도 괜찮다. 핸드폰을 켜 놓든, 누워서 보든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자동차극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97년. 현재 수도권에만 15곳 정도가 성업 중이다. 부산, 목포, 대전, 제주 등 지방에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 내 `광개토21'이나 `드라이브 인 양평극장'처럼, 자연을 배경으로 들어서는 곳이 많다.
자동차극장의 주관객층은 30대 젊은 부부들이다. 어린 아이 때문에 실내 극장에 갈 수 없는 가족들이 자주 찾는다. 6개월 된 딸을 동반한 하용철씨(35)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오붓하게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프로그램도 최신작이다. `허리케인 카터'나 `리플리' 같은 실내극장 개봉작을 볼 수 있다. 가족 관객이 많아서,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작품은 틀지 않는다. 오락영화 중심이다.
한국자동차극장협회 박성복회장은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분위기가 매력이다. 특히 비가 올 때는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관객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야외에 자리잡은 탓에, 영화 상영은 대개 오후 8시 시작한다. 심야상영도 한다. 음향은 자동차 오디오의 FM 주파수를 이용해 듣는다. 입장료는 1만 5000원. 크기나 인원에 관계없이 차 한 대당 똑같이 받는다.
[임정식 기자 d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