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전여옥 '휴대전화 바쁜척 수법'
기사입력 2000년 03월 29일 14시 50분
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바쁜 척을 해왔다. 요즘 일은 대개 휴대전화를 통해서 이뤄진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전화응답을 하다보면 10분도 좋고 어떤 때는 30분도 좋게 피같은 시간이 흘러간다. 그래서 나름대로 `바쁜척 숫법'을 개발했다.
첫째. 음성의 수위내지는 빠르기조절을 통해 바쁜 척을 한다. 다음에 중요한 것은 일단 헉헉거리는 것이다. 마치 급한 일을 하다가 전화를 받듯 `넷?！-'하면 마음약한 상대방은 `지금 굉장히 바쁘신가 봐요. 아주 간단히 이야기할께요'라고 나온다. 그러면 나는 소리만 내지 않을 뿐 입이 찢어지게 웃는다.(영상전화가 나오는 것 정말 싫다-)
또 나의 바쁜 척하는 숫법… `그러시면 12시 15분 아니 17분까지 제가 가 있을께요'라고 시간을 분단위로 지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5분단위도 부담스러운 마당에 분이라니-하며 제 시간에 칼같이 나가야 되는구나 하는 스트레스를 받게된다. 또 일위주로 시간절약이 확실히 된다.
그런데도 시간이 없고 바쁜 것은 여전했다. 그래서 나는 `그럼 잠을 줄이자'라는 대 용단을 내렸다. 아침잠이 취미인 나로서 새벽잠도 반납하겠다는 것은 엄청난 자기희생인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잘 아는 펀드매니저의 이야기를 듣고나서였다. 즉 월 스트리트 새벽 5시에 출근하는 사람-벤츠나 아우디를 타고온다. 아침 7시-적당한 중형차를 타고 온다. 아침 8시-딸딸이를 몰고온다. 아침 9시-지하철을 타고온다. 물론 차로서 그의 인생자체를 재단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일찍 일어나면 돈 많이 벌고 부지런하면 잘 산다는 고전적인 테마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련하고 부지런한 곰과인 나는 `부지런하게 더욱 바쁘게 살아야지'하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정말로 잘 나가는 친구인 경영컨설턴트를 만났다. 그는 몸값이 상종가를 치는 진짜 뜨는 인물이다. 차를 마시는데 노닥노닥거리며 그렇게 한가할 수가 없었다. `우째 이런 일이-너처럼 바쁜 사람이--'라고 말을 꺼내자 그가 대답했다. `바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거라구. 시간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지. 자기관리능력이 없다는 표시 아니겠어?'
`오호--'감탄하는 나-. 그래도 학구열이 높은 나는 포기하지 않고 월스트리트건을 이야기했다. 그의 말 `그것은 20세기적 월스트리트지. 이제 두뇌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지적 자본시대잖아. 게으르고 창의적인 사람이 성공한다구-'라고 단칼에 분석했다.
즉 21세기에 잘 나가는 사람은 누구냐? 시간이 많아 건달처럼 백수처럼 느긋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끝없이 울리는 휴대폰에 대고 헉헉대는 나같은 사람은 20세기적 시간관념에 얽매인 사람이란 말이다. 오늘부터 우아하고 느긋하게 휴대폰 좀 받아볼까?
[방송인 satuki＠chollian.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