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조국과 동포 (22)

기사입력 2000년 03월 28일 13시 52분


다음날 아침, 이대진과 고윤희를 맞은 장용수는 불안한 표정이었다. 만나는 장소도 언제나 이용했던 이화원의 동궁 앞이 아니라 성외의 허름한 식당으로 변경시켰다. 아침 8시반이어서 식당 손님은 그들 셋 뿐이었다.

"최삼동은 제 여편네를 만난 후에 실종되었소. 공안 쪽에 알아보았더니 잡아간 흔적이 없습니다."

장용수가 눈알을 분주하게 굴리며 말했다.

"북한 사냥꾼들이 잡아간 것이란 말입니다. 이제 우리 명단은 북한 쪽에 다 알려졌다고 봐야 됩니다."

"지금 노인들을 데려가야겠소."

이대진이 그의 말을 잘랐다. 정색한 그가 장용수를 똑바로 보았다.

"당신들이 부주의했기 때문이오. 우리 탓으로 돌리지 마시오. 자, 여기 100만 위안을 가져왔소."

턱으로 탁자 밑에 놓인 가방을 가리킨 이대진이 자리에서 일어날듯이 엉덩이를 들었다.

"노인들한테 갑시다."

"최삼동이의 몫에다 우리 동지들의 도피수당까지 더 주셔야겠소."

의자에 등을 붙인 장용수가 실눈으로 이대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100만 위안을 더 내시오. 200만 위안을 내야 넘겨 드리겠소."

"강도 같은 새끼."

이대진이 웃음 띈 얼굴로 말했다.

"나도 장사를 꽤 했지만 너같이 철면피한 강도 높은 처음 보았다."

그러자 장용수가 눈을 치켜뜨더니 입술 끝만 올리며 따라 웃었다.

"한국놈들이 돈자랑 하는걸 하도 보아서 내 간도 커진 모양이야."

"나도 한계가 있어. 내 개인 돈을 투자하는 것이니 손 털겠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대진이 식탁을 두손으로 짚고는 장용수에게로 상반신을 기울였다.

"나도 감정이 있는 인간이야. 이젠 네 놈 꼴 보기 싫어서 그만둔단 말이다. 노인들은 네 놈 마음대로 처리해."

가방을 쥔 이대진이 잠자코 앉아만 있는 고윤희에게 말했다.

"갑시다."

"할 수 없군요."

따라 일어선 고윤희가 장용수를 내려다 보았다.

"당신 욕심이 화를 불렀어요. 지금 당장 신고하기 전에 어서 도망 치도록 하세요."

고윤희는 이대진을 따라 식당을 나왔다. 햇살이 환한 아침이었지만 성외의 거리는 한산했다. 택시 정류장에 섰을 때 고윤희가 이대진을 바라보았다.

"저 놈이 연락해 올까요?"

"틀림없이 해 올거요."

"시간이 촉박해요. 관광객은 11시에 호텔에 들어올테고 내일 아침 10시에 베이징을 떠납니다."

이대진이 머리를 끄덕였다. 오늘 중으로 노인들이 동양호텔에 투숙해야 하는 것이다. 바짝 붙어선 고윤희가 혼잣 소리처럼 말했다.

"그 자리에서 흥정하면 될 수도 있었어요."

"알고 있소."

뱉듯이 말한 이대진이 쓴 웃음을 지었다. 가방 속에는 150만 위안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도 앞쪽을 보며 말했다.

"나도 장삿꾼이요. 그래서 그 놈의 약점을 파고든 거요."

"약점이라니요?"

"그놈은 최삼동의 몸값까지 내렸지만 최삼동이 때문에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야만 하게 되었소. 북한 사냥꾼들이 지금쯤 바짝 조여올테니까."

머리를 돌린 이대진이 고윤희를 보았다.

"우리만 급한 것이 아니란 말이요. 지구력 싸움이 되었는데 누가 이기나 봅시다."

택시가 왔으므로 그들은 말을 그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