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일본부모들의 노땡큐선언 파라사이트족
기사입력 2000년 03월 28일 13시 24분
열흘 전 서울에서 대학2년생인 친구 딸이 일본여행을 왔다.
카메라, 비디오카메라, 한껏 멋을 낼 수 있는 옷과 구두가 가득히 들어 있는 가방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여행을 왔다.
물론 숙소는 우리집.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자 일본인 친구들이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왜 한국사람들은 `무대뽀'가 많으냐고 아우성이었다. 어떻게 유학생집에 와서 돈 한 푼도 안내고 그리 오랫동안 머무를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일본인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라고 펄쩍 뛰었다. 그래서 내가 길게 설명을 했다. 아주 친한 친구의 딸이니까 내 딸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괜찮다고. 그러자 그들은 또다시 반론@다. 친할수록 예의는 더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일본은 지방에서 친척이 오면 대개 집근처 여관에서 잠을 재운다. 물론 집이 좁아서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사실은 직계가족이 아닌 이상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배려가 깔려 있다. 그래서 결혼식이 있어 친척들이 모일 때는 아예 여관 하나를 모두 빌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를 두고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정이 없어서 그렇다고 비난한다.
이렇듯 일본인들은 설사 친척이라고 해도 상대방에게 폐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또한 그만큼 상대도 자신에게 폐끼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서로 깨끗하게 신세를 지지 말자는 신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일본인 친구가 있는 한국인들이 한국식으로만 생각하고 일본친구를 믿고 왔다가 깊은 상처를 받고 돌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한 일본친구는 일본친구대로 사전에 자신의 허락도 없이 무조건 `무대뽀'로 일본에 와서 재워달라고 하면 어떡하느냐고 항변한다.
이렇듯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은 자식이든 타인이든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그 상대가 설령 자식이라 할지라도 싫어한다. 그래서 자식이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성인이 돼도 그냥 부모집에 눌러앉아 살고 있는 자식들이 예뻐보일리가 없다. 게다가 불경기를 핑계로 생활비조차 제대로 내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신문에서 `파라사이트 싱글'이라는 타이틀로 한 면 전체를 특집으로 꾸몄을까. `파라사이트 싱글'이란 집 2층에 하숙하고 있는 아들이나 딸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이처럼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하숙생'들은 심기 불편한 부모들의 심드렁한 기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불경기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 부분을 주거비가 들지 않는 것으로 충당한다. 그러므로 해외여행이나 자신이 가지고 싶은 브랜드제품을 살 수가 있다. 이들의 특징은 부모는 하루빨리 분가하기를 원하는데도 정작 본인들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독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천만 명이 넘는 이같은 `파라사이트족'들이 경제대국 일본답게 각계전문가들에 의해 경제적인 사회병리현상으로 분석된다는 점이다.
"그들이 늘어나서 곤란한 점은 세금이 걷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러스트 와타나베시의 얘기다. 그런가 하면 정말이지 정나미 떨어지는 수필가의 분석도 있다.
"나중에 부모의 부양을 책임쳐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모가 쓰러졌을 때 함께 살고 있는 자식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딸의 경우 결혼, 출산 등 도움을 받다가 나중에는 부모를 모셔야 하는 부담이 따를 수 있다. 그러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하루빠리 독립하는 것이 낫다."
에세이스트 기모토시의 얘기다.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면 빨리 독립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의견은 비단 기모토시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면에서 늘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학교수도 같은 말을 한다.
"본인들로서는 좋지만 사회로서는 좋다고만 할 수 없다. 우선 경제적으로 집과 가재도구등 기본적 소비가 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부모에게 의존하는 생활을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인들은 장래의 부담을 깊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동경대학의 야마다교수가 주장한 말이다. 야마다 교수가 말한 장래의 부담이란 바로 부모의 부양을 가리킨다. 그런데도 여전히 파라사이트족은 줄어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 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