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이성진 '정부의 정보마인드는 코미디 수준'
기사입력 2000년 03월 21일 15시 12분
얼마전 상식 이하의 욕설로 총선시민연대(www.ngokorea.org) 게시판을 더
럽혔던 주범이 국회의원 회관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자질과 도덕성에 대해 한바탕 비난이 일었다.
국회가 국민의 세금으로 사들인 컴퓨터로 저지른 이번 사이버 테러 사건
은 그러나 왠일인지 유야무야 그냥 넘어가버렸다. 범인이 누군지 알면서
도 "밝히지 않겠다"고 말한 국회행정사무관의 당당한 태도도 이해가 안되지
만 이런 범죄성 사건을 지켜보면서 그냥 넘어가는 시민들의 태도 역시 이해
하기 어렵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 사건을 통해 국회의원들의 인터넷에 대한 의식이 얼마
나 원시적인가를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은 오마이뉴스의 사이버
팀에 의해 적발되었는데 게시판에 남아있는 IP 주소를 추적해본 결과 출처
가 의원회관이라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IP 주소를 추적해 들어오면 밝혀진다는 것을 모르고 함부
로 인터넷 세상에서 경거망동을 했다는 것은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실세상
에서는 국가의 정책을 입안하는 위치에 있을지 모르나 인터넷 세상에서는
앞뒤 가릴 줄 모르는 초보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새천년민주당의 사이버 캐릭터 `e-민주'양의 경우도 이런 정부의 일천한
정보마인드에서 나온 걸작(?)이다.
그녀는 80년생 2000학번이라는 프로필을 가지고 젊은 유권자들을 모으기
위해 활동 중이나 따져보니 적어도 재수생의 프로필(?)을 가진 것으로 밝혀
졌다. 더우기 e-민주양의 생일이 새천년민주당의 창립일인 1월 20일과 같다
고 하니 심한 경우 삼수생일 수 있다는 결론까지도 가능하다.
이처럼 사이버 캐릭터를 통한 사이버 전략에서마저 구멍이 숭숭 뚫린 모습
을 드러내는 정부의 정보화 의식은 김대중 대통령의 E-메일 주소를 결정하
는 과정에서 그 결정판을 보여준다.
알다시피 김대중 대통령의 E-메일 주소는 `webmaster@cwd.go.kr'이다. E-
메일 주소를 웹마스터로 정한 동기를 밝히는 자리에서 청와대 대변인은 "김
대통령이 메일을 직접 관리하고 정보강국을 이루겠다는 굳은 의지에서" 정
했다고 했는데 과연 웹마스터의 사전적, 또는 관용적 의미를 알고나 있는
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보통 웹마스터라고 하면 웹사이트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 기술자를 지칭
하는 말로 우리나라의 경우 대개 웹디자이너나 웹PD 등 웹에 관련된 정통
한 사람들이 맡아서 하고 있다.
따라서 웹마스터는 상당히 기술적인 숙련도를 가진 관리자를 뜻하며 이들
의 역할과 별도로 게시판을 관리하거나 E-메일 문의에 대해 답변을 해주는
사람을 보통 운영자라고 한다.
아마도 `마스터'라는 의미를 확대 해석해 웹마스터를 `최고 책임자' 정도로 생각하고 엉뚱한 이름을 과감하게 채택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의 E-메일주소는 당연히 `프레지던트'라고 해야 옳다. 이는 중학교
정도의 수준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단어인 동시에 웹마스터보다 더
의미가 정확하게 다가오는 주소다.
이를 외면하고 굳이 `웹마스터'를 고집한 것은 나름대로 홍보를 위한 사연
이 있겠지만 이를 접한 네티즌으로 하여금 정부의 인터넷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일천한지 만방에 알린 결과가 됐다.
일본의 유명한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가 한 말중에 참고할 대목이 있
다. "국가의 정보인프라가 갖춰지는 속도를 알려면 복잡한 통계자료를 뒤적
거릴 것도 없이 그 나라 관료의 정보화 수준을 보면 된다"고.
국회의원이 되었든 정부관료가 되었든 간에 인터넷 세상에서 못배운 부류
로 무시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시대의 룰과 지식을 배우는 자세가 필
요할 것이다.
[데일리클릭 보도국장 master＠dailyclic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