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노트] 방빼는 현대 '기분 참 묘하네'
기사입력 2000년 03월 21일 14시 34분
방빼는 기분 참 괴상하다. 당장 오는 25일부터 SK가 인천구장서 홈 시범경기를 치르게 되면서 현대가 바빠졌다. 이후로 4게임이나 잡혀있던 인천 시범경기를 통째로 들어내는 일은 오히려 별일이 못된다.
3년동안 만만찮게 늘어난 살림을 사나흘만에 정리하는 일이 대공사. 무엇을 챙기고 무엇을 남겨야 할지도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다.
빅딜에서 밀려나 통째로 물려주는 것도 아니고, 보상금을 챙기지도 못하는 판이다. 자잘한 집기와 설비를 하나라도 공으로 두고가긴 아까운 노릇. 그러나 꼼꼼하게 챙기자니 당장 며칠뒤부터 경기가 예정된 SK가 번개처럼 뚝딱 새살림을 차려낼 자신이 있는지도 은근히 궁금하다.
줄 것은 주고, 팔 것은 팔 요량으로 현대는 "구장 안팎을 둘러보며 상의하자"고 보채지만, 할일이 태산인 SK는 미처 신경이 닿지않는 모양. "비품대장이나 보내달라"고 미루는 통에 현대가 샐쭉했다.
땅고르는 기계에 VIP실, 기자실 등의 의자와 캐비넷까지 이사목록에 적었다. 싹 포장이사를 시킨다는데 휑하니 비어버린 구장 구석구석을 보게되면 괜시리 전주인이 야박스레 느껴질지 모르겠다. 물론 새주인이야 대책이 있겠지만.
지난해초 반도체 빅딜때 두 야구단이 묘한 심정을 교환했다. LG반도체가 현대전자 반도체 부문에 흡수되면서 LG반도체 영동빌딩에 들어있던 LG 구단사무실이 역삼동으로 이전하고, 공교롭게도 현대전자 부사장인 강명구 야구단사장의 사무실이 그 빌딩으로 들어갔다.
방빼는 심정 참담했고, 들어가는 심정 야릇했을 터. 그때와 같은 그림은 아니지만 지금은 현대가 짐을 싼다. `내년에 서울서 웃자'고 속을 꾹꾹 눌러대면서.
[이승민 기자 cjminn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