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조국과 동포 (15)

기사입력 2000년 03월 20일 16시 51분


"29만 위안은 기본 경비이고."

장용수가 힐끗 노인들의 숙소 쪽을 보더니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위험수당이 추가 되어야겠단 말입니다. 북한의 사냥개들이 저 노인들을 잡는데 현상금까지 걸었단 말입니다."

밤 11시가 되어가고 있어서 노인들의 숙소는 조용했다. 창고 벽쪽에는 장용수의 동료 셋이 노름을 하느라고 이쪽은 거들떠 보지 않는다.

이대진이 삐걱대는 나무의자에 등을 붙이고는 장용수를 바라보았다. 오늘까지 장용수를 다섯번째 만나지만 조금도 인간적인 헛점이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었다.

장용수가 유능한 세일즈맨 자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이대진의 얼굴에는 옅은 웃음기가 번졌다. 그것이 긴장한 채 이대진의 반응을 주시하던 장용수에게 자극을 준 것 같았다. 장용수가 눈썹을 세웠다.

"왜 웃으시오? 내 말이 우습소?"

"추가비용이 얼마요?"

정색한 이대진이 묻자 장용수가 헛기침을 했다.

"다섯명분이 20만 위안이요."

"그럼 지금까지 49만 위안이로군."

"그렇습니다."

"이번 사업으로 부자가 되시겠소."

"식구가 20명도 넘습니다. 쪼개면 얼마되지 않는단 말입니다."

20명은 3배쯤 불린 인원이었다. 이대진이 이제까지 본 바로는 납치범은 모두 7,8명이었는데 2교대를 했다. 장용수가 대답을 듣겠다는 듯이 상체를 바짝 기울였다.

"이선생, 결심을 해주시오. 오늘까지 49만 위안이요. 합의하시겠소?"

"일주일 안으로 노인들을 인도하겠지만 50만 위안 이상은 못줍니다."

그러자 장용수가 분주하게 눈을 깜빡이더니 불쑥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50만 위안으로 일주일 후에 데려가는 것으로 합시다."

장용수의 손을 쥔 이대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노인들의 요구는 다 들어주시오. 이 약속도 합의에 포함이 되는 거요."

이대진이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새벽 1시경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그가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마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를 들었더니 박장호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형, 내 뒤에 1개 분대 정도의 미행이 붙어있어. 내가 졸지에 베이징 정보계의 스타가 된 기분이요."

그리고는 그가 소리내어 웃었다.

"시발놈들이 내 방귀 냄새를 맡은 모양이야."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대진이 다그치듯 묻자 박장호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제3국으로 빼기로 결정했소. 그런데 나는 동행 못합니다. 상황이 이래서요."

"나 혼자 가지요. 그럼."

"아니, 이형 혼자서는 벅차. 지리도 모르는데다 언어 문제도 있고. 그리고 첫째로 경험이 부족해."

이제는 박장호가 서두르듯 말했다.

"내일 오전 10시 정각에 누가 전화를 하고 찾아갈 거요. 암호는 `소양강'입니다."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으므로 이대진은 길게 숨을 뱉았다. 이제야 승인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비밀 작전이다. 아마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에는 모두 모른 척 할 것이고 책임을 몽땅 뒤집어쓰게 될 것이었다.

새벽 2시가 되었을 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오성호였다.

"보스, 백경일이 최후통첩을 했습니다."

그는 술기운이 풍기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더니 물었다.

"보스, 조부장한테 털어 놓을까요? 물론 보스가 미쳤다고 할겁니다만."

"입 닥치고 있어. 말해도 나한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대진이 다짐하 듯 말했다.

"난 곧 이곳을 떠난다. 잘 하면 일주일 안에 서울로 돌아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