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감좋은 화면에 웃음 가득한 영화 `시암 썬 셋'
기사입력 2000년 03월 19일 16시 04분
호주 출신 존 폴슨 감독의 영화 `시암 썬셋'을 보고 `느낌'이 오지 않거든, 당신의 문화적 감수성의 시침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은 드라마 체질이거나, 혹은 쉰세대의 정서에 푹 빠져 있음이 분명하다.
`시암 썬셋'은 인터넷, 디지털, 벤처 산업, 주식 열풍 등 쏠림 현상이 심각한 현실적 가치와는 동떨어진 엉뚱한 발상의 영화다. 그러나 일탈적인 끼를 타고난 못말리는 영화팬이라면 즐겨 마땅한, 로드무비를 타고 달리는, 색다른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하지만 결코 장르영화의 진부한 `비빔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창조적 스타일을 뽐낸다.
영국의 어느곳, 주인공 페리(라이너스 로치)의 직업은 색을 만들어내는 `컬러리스트'다. 자신의 운명에 액운이 끼였는지, 어느날 화물수송 비행기에서 떨어진 냉장고에 깔려 그의 아내 마리가 즉사하고마는 불행을 맞게 된다.
이 `페리의 법칙'은 예고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데, 반드시 그가 지나간 뒷자리에서 터진다는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시선을 전방을 향한 채 목빠지게 집중하고 있을 때 친구로부터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얼얼한 느낌이, 바로 이 영화의 맛이다.
모든 문제해결을 현실에 집착하는 가운데서 찾으려는 어리석음이여, 한발 뒤로 물렀거라! 호주의 광대한 사막여행을 통해서 페리가 시원스런 용모의 그레이스(다니엘 코맥)를 만나 해피한 사랑을 하고, 자기만의 독창적인 색깔 `시암 썬 셋'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마음의 여유를 찾아 모험할 것을 꼬드기는 영화의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시암 썬셋'은 눈을 맑게 하는 색감좋은 화면에 웃음 보따리가 가득한 영화다. 뿐만 아니라 장면 곳곳에 살의(殺意)가 번득이는 스릴러와 호러 장치를 깔아놓아 폭소속에서 `섬뜩한 전율'을 맛보게 한다.
영화에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가 그룹별로 많이 등장해 영화의 가지가 새롭게 뻗을 때마다 윤기나는 재미를 쉴사이 없이 제공한다. 그러나 핵심적인 재미와 의미는 죽은 아내를 잊지못해 고통받는 페리역의 라이너스 로지의 연기에서 우러난다.
살의에서 출발해 다시 행복한 감정을 되찾기까지의 흐름과 변화를 잘 이끌어냈다. 그는 동성애자 신부로 출연한 영화 `프리스트'에서 가슴 저린 슬픔을 선보인 바 있다.
1999년 칸 영화제 관객인기상과 부천국제영화제 대상(부천 초이스)을 수상했다.
(25일, 코아아트홀 강변CGV11 명보 MMC 동아 키노)
[양윤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