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 2군서 혹독한 훈련
기사입력 2000년 03월 17일 12시 03분
잘 나가던 시절, 구단의 눈밖에 나 쫓겨온 곳이 바로 빛고을. 한국현대사에 반역의 땅으로 기록된 그곳에서 그는 선수협의회라는 한국프로야구의 새로운 역사를 준비했다.
16일 오전. 양준혁은 난생 처음 2군 캠프를 구경했다. `조직의 쓴맛'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형편없는 선수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믿었던 2군.
하긴 20여년 동안 야구선수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온 그가 2군 캠프에 설 줄은 아무도 몰랐다. 지금은 이승엽(삼성)에게 넘겨줬지만 불과 2∼3년전까지도 그는 국내 최고의 슬러거였다. 물론 지난해 올린 실적도 남부럽잖은 것이었다. 3할2푼3리의 타율과 32홈런 105타점. 비록 해태가 포스트시즌에 오르진 못했지만 그는 선수협에서 활동할 때처럼 경기마다 최선을 다했다.
새까만 후배들과 펑고를 하는 동안 양준혁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배운 게 야구 밖에 없는 이들. 고교 졸업과 함께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몸값을 받고 묵묵히 뛰는 후배들. 그들을 보는 양준혁의 눈빛은 `어쩌면 진작부터 나는 여기에 있었어야 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진정한 땀의 의미를 깨우치는 듯한 표정이었다.
양준혁은 광주에 도착한 15일 선수협 홈페이지(www.kpbpa.net)에 `꿈의 구장, 그 자유를 위해'라는 글을 남겼다.
"야구가 좋아서 시작했고, 야구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상상하지 못했던 내게 이 엄청나고 힘든 일이 주어질 줄은 몰랐습니다.…저는 함께 했던 동료들의 선택과 행동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이 어려운 때를 돌아보며 올바른 길을 가도록 항상 기억하고자 합니다.…저는 지금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2군에 가서 연습을 할 것입니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요. 왜냐하면 2군에 속해있는 동료 후배들과 생활하며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서로를 배우는 시간이 될테니까요.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새로운 야구를 하고 싶습니다. 성적과 승패에 집착하지 않고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하는 진정한 야구. 꿈의 구장, 그 자유가 있는 그날까지."
[광주＝류성옥 기자 watchd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