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조국과 동포 (12)
기사입력 2000년 03월 16일 13시 56분
베이징주재 북한대사관의 2층 소회의실에 모인 공작조원은 김경희를 포함하여 모두 7명이었다.
벽시계는 오전 9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장방형 테이블의 위쪽 모서리에 앉아 좌우의 3명을 둘러보는 김경희의 표정은 싸늘했다.
위압적인 태도 때문인지 그녀의 시선을 제대로 받는 사내가 없다. 김경희가 입을 열었다.
"그 영감들은 조선족의 보호를 받고있는 거야. 한국인 전문 납치조직이 데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낮으나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녀는 말을 이었다.
"조선족 내부의 정보를 얻어야돼. 정보를 준자에게는 현상금 1만위안을 준다는 소문을 내도록."
"알겠습니다. 그런데."
왼쪽 옆자리에 앉은 30대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인터내셔널 호텔에 있던 이대진이 잠적 한걸보면 영감들의 거처를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놈만 잡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미 공안당국이 수배령을 내렸어."
차겁게 말을 자른 김경희가 사내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자를 잘 알아. 당신들의 생각처럼 간단하게 잡히고 자백할 사내가 아니야."
무안을 당한 사내가 시선을 내리자 김경희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
"하지만 그자의 추적도 병행하도록. 방심하고 있다가는 그자한테 뒤통수를 맞게 된다."
말을 그친 김경희가 턱을 들어 보였으므로 작전회의는 끝이났다. 일제히 일어선 사내들이 방을 나갔지만 오른쪽 옆자리에 앉았던 둥근 얼굴의 사내는 엉덩이를 드는 시늉을 하다가 남았다. 방에 둘이 남았을 때 사내가 말했다.
"조장, 이대진과는 악연입니다. 이제는 중국에서 탈북자 문제로 얽히다니요."
김경희의 시선을 받은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자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이란 말입니다."
"도대체 그자는 왜 이런일에 나섰을까?"
눈을 크게 뜬 김경희가 사내에게 물었다. 정색한 표정이었는데 이제까지의 권위적인 태도는 사라져 있었다. 사내는 나이는 위였지만 오랫동안 같이 일해 온 손일태였다. 김경희가 머리를 기울였다.
"그자하고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일이란말이야.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정부 정책에 거역하는 행동을 하고있어. 도무지 이해가 안돼."
"지난번에 서울에서도 제멋대로 행동하긴 했지요."
손일태도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꼼짝없이 정부기관으로부터 당하게 될겁니다. 이제 대사관에서 회사로 연락이 갈테니까 말입니다."
"돈키호테 같은 자야."
"돈키호테가 누굽니까?"
"소설 주인공인데 창을 들고 풍차를 향해 돌격한 사내지."
"풍차 주인하고 원수 사이였습니까?"
입맛을 다신 김경희가 머리를 저으며 일어섰다.
"노정수와 박장호 감시를 철저히 하도록 해. 특히 국정원의 박장호를 말이야."
"하고 있습니다."
박장호가 겉으로는 허술하고 덜렁거리게 보였지만 노련한 요원이라는 것을 김경희도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박장호의 조선족 정보원을 파악하지 못한 것도 그가 철저하게 연막을 뿌려놓았기 때문인 것이다.
방을 나온 김경희의 옆으로 손일태가 따라 붙었다.
"조장, 한국정부 측이 협조해 주는 이상 며칠이면 작전이 끝날겁니다. 이대진은 그 안에 잡힐 것이고 말입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