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벤치서 빛난 천재투혼
기사입력 2000년 03월 13일 14시 10분
삼보 엑써스의 허 재(35．1m88)는 현역 5명의 플레잉코치 중 한명이다.
그런 그가 12일 안양 SBS와의 플레이오프 준준결승 3차전에서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벤치를 지켰다.
10일 원주 경기서 입은 왼쪽 무릎부상 탓이다. 97∼98시즌 챔피언결정전때는 눈두덩과 왼쪽 손등을 다치고도 MVP에 뽑혔지만 최소한 2주간의 치료를 요한다는 진단이 나와서 꼼짝 못하게 됐다.
후배들 보기가 미안해 유니폼을 입고 벤치에 앉을 참이었는데 최종규 감독이 "플레잉코치니까 멋 좀 부리라"고 채근해 양복을 빼입었다.
SBS가 2연승한 뒤라 경기는 자연스레 과열됐다.
휘슬이 울릴 때마다 어디선가 "야, 뭐야!" "진짜 이래도 되는 거야!"라는 고성이 쩌렁쩌렁 코트를 갈랐다.
관중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나는 쪽으로 쏠렸다.
허 재였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채 특유의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심판을 노려봤다. 타운젠드가 상대 파울을 얻으며 올려놓은 레이업이 불발되자 발을 구르며 아쉬워했다. 자기의 대타로 출전한 김승기가 척척 슛을 날리자 믿음직스러운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들의 플레이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은 코트에선 전혀 볼수 없던 표정이었다.
평소 허 재의 잔소리(?)에 익숙해져 있는 심판들은 역시(?) 테크니컬 파울을 불지 못했다.
삼보가 20여점 앞선 4쿼터에서야 허 재는 박수를 치는 여유를 보였다. 결국 삼보의 88대65 승리.
언제 그랬냐는듯 한껏 무게를 잡고 라커룸으로 향하는 허 재에게 최감독이 한마디 던졌다.
"허코치, 첫 승 축하해."
[김미연 기자 ibiz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