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유재순 지금일본은… 이종범씨께 (2)
기사입력 2000년 03월 13일 13시 28분
이종범씨!
며칠 전 한국신문을 통해 이종범씨가 2군으로 편입된 걸 알았습니다. 일본신문에는 보도되지도 않았지요. 그런데 한국신문에는 한페이지를 차지할만큼 이종범씨에 대한 기사로 가득차 있더군요.
전 그 때 `아차' 싶었습니다, 지난번 호시노감독이 이종범씨를 1군에서 제외한다고 발언했을 때 한국기자들을 붙잡고 울분을 토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이 대서특필됐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이럴 때가 아닌데'하는 위기감마저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일본인들은 정보의 나라답게 빨랐습니다. 정확한 기사내용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대충 어떤 톤으로 이종범씨가 감정을 표출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 알았느냐구요?
물론 주니치 구단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런 내용의 기사가 나올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종범씨!
어제의 제 편지에서 제가 지난주 많은 일본인들을 만나 당신 얘기를 했다고 말했지요. 그들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사람은 정말로 `아마이'하다, 특히 이종범씨는 더욱 그렇다'고 말입니다.
제가 일본과 관련을 맺은 지난 20여년 동안 일본인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바로 이 `아마이하다'라는 말입니다. 특히 일본과 비즈니스를 하는 경제인이나 일본에 진출한 한국선수들을 평가할 때 일본인들이 곧잘 쓰는 말입니다.
`아마이'의 의미는 직역하면 `달다'라는 뜻이지만 사람에게 적용할 때는 결코 `달콤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리광 피우며 버릇없는 아이들을 가리킬 때 `저 애는 아마이 해'라고 표현합니다. 또 맺고 끊는 것이 불확실한, 대체로 성격이 야무지지 못하고 무른 사람을 `아마이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어른으로서 이 말을 듣는다면 그 사람은 곧 책임감이 결여된, 인간성으로 본다면 선하다고 할 수 있지만 비즈니스에서는 결코 파트너가 될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일본인들의 특성은 절대로 `노(no)'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와카리마시다(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곤 합니다. 이 말은 곧 정중한 거절을 의미하는데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나중을 기약하는 줄 알고 기대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일본과 합작을 하는 한국 비즈니스맨들이 자주 이런 우를 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인들이지요. 나중에 계약이 성사가 안되면 분명히 `알겠다'고 말해놓고 이제와서 다른 소리 한다고 펄쩍 뜁니다. 그리고 뒤에 가서 `두 얼굴을 가진 일본인'이니 `믿을 수 없는 쪽바리'니 별의결 험담을 다합니다. 결국 짝사랑하다가 혼자 화풀이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같은 한국인을 가리켜 `아마이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종범씨!
일본인들은 이종범씨에 대해서도 바로 이 표현을 했습니다. 기분 나쁘시겠지만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종범씨는 호시노 감독과 어긋난 이유에 대해 지난 가을 훈련캠프 불참 때문이었다고 한국기자들에게 수@이 이야기했습니다.
아버님의 병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참했으며 호시노 감독도 이를 용인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이같은 상황을 놓고 이종범씨와 호시노 감독의 인식 차이가 너무도 다르3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앞에서 말한 전형적인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종범씨는 `호시노 감독의 양해'라는 부분을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대로 풀이했고, 호시노 감독은 호시노 감독대로 전형적인 일본식의 사고로서 당신을 판단하고 평가했습니다. 제가 만난 일본의 야구전문기자들이나 다른 분야 기자들도 호시노 감독과 생각이 같았습니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요.
이종범씨!
`아마이하다'는 평가는 당신에게는 곧 모욕입니다. 아주 굴욕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에는 한국인들이 흔히 생각하듯 `민족적인 차별'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 말의 의미 그대로 `아직 프로답지 못하다'는 것일 뿐입니다. 이제 그 이유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종범씨도 몇 년전 사망한 호시노 감독 부인 이야기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시겠죠?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