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군추락 남편 눈물 가슴아파'
기사입력 2000년 03월 13일 12시 41분
일본 진출 3년만에 `2군행'이라는 가장 큰 시련을 겪고 있는 주니치 이종범(30).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부인 정정민씨(29)가 스포츠조선에 애절한 사연을 보내왔다. 행간 곳곳에는 아내로서 느끼는 가슴 저미는 감정이 흠뻑 배어있다. 주니치 호시노 감독에게 보낼 편지는 아직도 책 갈피에 꼭꼭 숨겨두고 있다고 한다.[편집자주]
바람결에 숨어 코끝을 스쳐가는 봄내음으로 인해 싱그러운 아침을 맞이한 오늘. 정후(장남)와 가현(장녀) 그리고 내게 느껴지는 오빠의 빈자리가 유난히 커다란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이제 어느정도 익숙해질만도 하건만 아직까지도 내겐 원정길을 나서는 오빠의 뒷모습이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오빠, 한동안 내가 오빠한테 `외계인'이라고 불렀던 것. 기억해요? 슬프고 아쉬운 것, 좋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표현을 거침없이 하는 나에 비해 오빠는 언제나 같은 모습이었어요. 그런 모습에 심술이 난 내가 감정도 없는 외계인이라고 부르곤 했었는데….
하지만 요즘은 차라리 오빠가 정말로 `마음만 외계인'인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힘들어하는 오빠를 볼때마다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럽게 느껴지거든요. 그럴때마다 오빠가 힘들어하는 감정도 없는 외계인이었으면 해요. 오빠, 나 참 어리석죠? 오빠를 도와 어려움을 이겨나갈 생각은 안하고 쓸데없는 생각만 하니 말예요.
실은요. 한가지 고백할게 있어요. 얼마전 일인데요 내가 호시노 감독에게 편지를 한통 썼거든요. 다른 사람도 아닌 왜 나의 사람에게 이렇게 모진 시련을 주냐고….
내 남편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훌륭한 야구선수라는 말을 몇번이나 되풀이했고 가을캠프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조건 2군으로 떨어뜨린 호시노 감독의 행동에 대해 심한 나무람(?)도 적어봤어요.
사전을 찾아가며 며칠간에 걸쳐 쓴 편지를 아직 보내지는 않았지만 처음 본 오빠의 눈물에 대한 나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보듬어 준듯해 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오빠, 힘내세요.
이 세상에는요, 아름다운 것들이 아주 많은데 시련이 없이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빠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같아요. 오빠한테는 우리의 보물 정후와 가현이가 있고 오빠 마음속에 커다란 아름다움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말예요.
불평과 불만이 부쩍 많아진 요즘, 하루하루가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이제부터는 나도 마음 속에 아름다움을 담기위해 노력할 거예요.
오빠, 힘 내세요. 오빠 곁에는 항상 나와 우리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오빠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팬들이 있구요. 이것만으로도 오빠가 힘을 낼 수 있는 이유가 충분하니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해요.
좀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 조금만 더 아파하고 힘들어 하기로 해요. 오늘따라 오빠와 함께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감사함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함께하는 우리의 앞날이 아이들 눈망울처럼 반짝이기를 기원해봅니다.
얼마전 팩스로 인터넷 조사와 관련된 기사(인터넷 투표, 네티즌들의 반응을 다룬 스포츠조선 기사)를 받아 보았습니다. 유난히도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졌습니다. 우울한 구름으로 잔뜩 흐려있던 우리 가족에게 밝은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실 한동안 오빠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가 나올때마다 팬들의 마음도 싸늘히 변해버리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올해로 남편과의 인연은 등번호과 같은 `7(7년이라는 의미)'이 됐습니다.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흔들림없는 당당함과 겸손함으로 제곁에 서 주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 온 후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너무나도 힘이 드는지 가끔씩 한국으로의 진로를 말하는 오빠를 볼때마다 제 눈가엔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진짜 실력을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채 이대로 떠날 수는 없지않느냐고 말하곤 했습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지쳐있고 힘들어 하는 남편은 그날 밤 전화로 제가 인터넷 기사를 읽어준뒤 커다란 힘을 얻은듯 합니다.
아직까지 제 남편을 사랑해 주시는 팬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끝없는 믿음으로 제 남편을 지켜봐 주세요. 멋진 플레이를 하는 예전의 모습으로 재기해서 봄 햇살만큼이나 환한 웃음을 머금고 여러분 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습니다.
제 남편에게 많은 사랑과 믿을을 주시시는 팬 여러분이 언제나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종범 선수 아내 정정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