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유재순 지금 일본… 이종범씨께
기사입력 2000년 03월 12일 16시 35분
우선 이렇게 지면을 통해 결례함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종범씨!
죄송하지만 형식적인 인사와 미사여구, 입에 발린 칭찬, 전혀 영양가 없는 민족성 이야기는 다 빼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종범씨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특히 과거 한국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더욱 모릅니다. 하지만 이종범씨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뒤의 활동에 관한 것, 이를테면 이종범씨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 야구전문가들의 평가, 구단관계자들의 인식 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이종범씨의 지인들보다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꼭 얘기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종범씨!
억울하고 분하시겠지요. 아무리 곱씹어봐도 이해되지 않을 겁니다. 당장이라도 구단으로 찾아가 선후와 흑백을 가리고 싶으시겠지요. 또 일본선수들에 비해 전혀 뒤질 것 없는 실력과 의욕을 인정하고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답답함과 섭섭함, 구단에 대한 분노를 금할 길이 없으실겁니다.
거기에다 이종범씨는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간판스타가 아니었습니까. 누구나 한국프로야구하면 `해태의 이종범'을 떠올렸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니 이젠 중심에서 이탈한 아웃사이더가 돼 2군으로 추락했다는 현실을 전혀 인정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내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끝없는 분노를 아주 가까스로 참고 계실 거라 생각힙니다.
저는 이번주에 참 많은 일본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며칠 전에는 아사히 TV 외신부 데스크를 만났습니다. 또 70년대부터 한일 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다 80년대 중반에는 증권회사 계열의 지국장으로서 한국에 산적이 있는 80세 가까운 지한파 노신사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며칠전에는 낮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일본 신문사기자들과 술을 마시며 한국에 대해, 특히 이종범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도 주니치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주간지 기자와 야구전문가를 만나 점심, 저녁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일본이란 나라는 참으로 모든 면에서 다양한 나라입니다. 경제, 문화, 사회, 스포츠 등 각 분야별로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다양한 사람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정보의 양또한 엄청나게 풍부하고 가지각색입니다.
이종범씨.
제가 일본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시시콜콜히 설명하고 있는 것도 바로 당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오래 살다보면 별의별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옵니다. 특히 우리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특히 더욱 그렇습니다. 만나서 식사하자는 전화가 제일 많은데 저도 가능한 기꺼이 응하곤 합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일본인들은 절대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사람과는 만나지 않습니다(물론 친구관계는 예외지만). 그런만큼 식사를 대접할 때는 뭔가 목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목적이 뭔지 잘 알기 때문에 식사요청에 기꺼이 응합니다. 저 또한 역시 그들과 목적이 같으니까요.
기자들은 정보를 먹고 삽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기자가 아니더라도 정보를 캐내는데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만큼 프로입니다. 이같은 현상은 스포츠계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이쯤되면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가 이종범씨도 짐작이 되시겠죠?
이번 주 내내 만나는 일본인들과 당신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소한 이야기가 토론으로 이어지고 그 속에서 그들의 생각에 간혹 동감을 느끼면서 때로는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지라 격렬하게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를 `한국여깡패'라고 부른답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