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카사노바] 가짜 재미교포 사업가 (12)

기사입력 2000년 03월 10일 14시 44분


강성수는 다음날 집에 들러 아내에게 우선 1000만원만 건네주고 시내 대형서점으로 가 요리에 관한 서적을 뒤적였다. 필요한 내용 몇가지를 메모해 암기해두고 오후 3시 결혼상담소로 나갔다.

여직원이 반갑게 맞았다. "마침 큼직한 한식집을 운영하는 분이 계시는데 강회장님 사진을 보여줬더니 한번 만나 뵙자는 겁니다"며 그녀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신상을 소개하고는 만나 보겠느냐고 물었다. 그 과부가 틀림없었다.

"네, 좋습니다."

여직원을 따라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미리 연락을 해뒀는지 그녀도 곧바로 들어섰다. 나이가 46세라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인지 그보다는 4∼5세 젊어보였다. 한정식집 주인 답게 한복을 단정하게 입고 나왔는데 좀 뚱뚱해 보였다. 여직원이 인사를 시켰다.

강성수는 명함을 건네주며 "강성수입니다"했고 그녀는 "윤미혜예요"하며 다소곳이 인사를 했다.

여직원은 둘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눈치를 살피고는 "두분이 말씀 나누세요. 저는 그만 실례하겠어요"하고 사라졌다.

"한식당을 하신다고요?"

"네, 그저 조그만 식당을 하나 운영하고 있어요. 회장님에 비하면 구멍가게죠."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술술 풀려나갔다. 서로 신상에 관한 얘기로 시작돼 사업얘기로 발전했다. 윤미혜는 영어까지 섞어가며 늘어놓는 강성수의 달변에 서서히 빠져들어갔다.

"제가 하는 일이 외식사업이잖아요. 한국으로 진출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한국엔 이미 많은 외식업체들이 진출해 있습니다. 그래서 완전 미국식보다 한국인들의 입에 맞도록 한식을 가미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식당 운영 경험이 있는 분을 배우자로 찾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양식과 한식을 접목시킨다는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요."

"일본의 튀김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스페인어인 덴뿌로에서 유래됐다고도 하고 포르투갈어 덴뻬로에서 유래됐다고도 하는데 어쨌든 17세기 중엽 나가사키에 유래된 서구요리를 일본식으로 바꿔 만든 것입니다. 음식 재료가 풍부하지 못했던 옛날 시장에서 팔다 남은 생선을 사다가 밀가루 반죽에 묻혀 튀겨서 상품화시킨 것이 덴뿌라가 된 것입니다."

윤미혜가 관심을 기울이는 눈치를 보이자 강성수의 달변은 한발 더 나갔다.

"연구가 필요합니다. 우리 회사 연구팀이 국내 요리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그게 하루이틀 걸려서 될 일도 아니고. 제가 윤여사처럼 한식업을 하시는 분과 결혼해 함께 사업을 벌인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강성수의 달변에 두시간이 흘러갔다. 강성수는 시계를 들여다 보더니 "아이쿠, 시간이 많이 됐군요. 윤여사님 바쁘실텐데 제가 시간을 너무 뺏은 것 같습니다"라며 윤미혜의 눈치를 살폈다.

윤미혜도 시계를 들여다 보고는 "그렇네요. 바쁘실텐데 이렇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했다.

"네, 제가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사실 오늘 사업상 중요한 손님과 저녁약속이 있거든요. 다음에 연락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윤미혜의 눈에 강성수는 지식이 풍부하고 매너 좋고 능력있는 사업가로 보였다. 다시 만나고 싶어 명함을 건네줬다. 강성수의 낚시에 입질을 시작한 셈이다.

"혹시, 제가 윤여사님네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한번 해도 결례가 되지 않을까요. 마침 내일 미국에서 손님이 오기로 돼 있거든요."

"어머, 그러다시면 영광이죠. 부담갖지 마시고 오세요."

"감사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