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조국과 동포 (5)

기사입력 2000년 03월 08일 15시 26분


이대진이 사무실을 나왔을 때는 그로부터 한시간쯤이 지난 후였다. 자루 옆에서 사내들과 둘러앉아 술잔을 들고있던 장용수가 일어서더니 그를 구석쪽으로 데려갔다.

"확인하셨을테니 이젠 우리를 믿을 수 있겠지요?"

장용수가 술냄새를 풍기며 물었다.

"돈은 언제 주실거요?"

"모셔갈 방법을 찾는대로."

"하루에 5000 위안씩 추가 된다는 걸 명심하시오. 내일 데려가면 26만 5000 위안이란 말입니다."

"노인들한테 하루에 한두번씩 규칙적으로 운동을 시켜주시오."

"운동이라."

이맛살을 찌푸린 장용수가 이대진을 노려보았다.

"도방가기 쉽게 말이오?"

"그래야 데려갈 수 있지 않겠소?"

장용수는 노인들의 요구대로 쌀과 고기를 제법 풍족히 가져왔으며 관절약도 사왔다. 그리고 내복도 여러벌 넣어주었고 모기약도 준비해왔다고 했다. 그렇지만 노인들은 창고 밖으로 나간 적이 없어서 운동부족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윽고 장용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좋소. 밤에만 운동을 시켜주지. 하지만 북조선 사냥꾼들이 베이징에 부쩍 늘어났단 말입니다. 아무래도 저 노인들을 잡으려고 온 것 같소."

"돈을 받으려면 당신이 철저히 보호해야 될 거요."

"위험수당을 더 받아야 될 것같은데."

힐끗 이대진의 눈치를 본 장용수가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저 노인들을 데려가면 밑천을 충분히 빼낼 수 있지 않겠소?"

"어떻게 말이요?"

"정착금이네 위로금이네, 그리고 50년 동안의 수당도 지급이 될텐데 거기에서 반만 떼어도 몇배 남는 장사가 될 것 아니오?"

"그렇군."

정색한 이대진이 머리를 끄덕였다.

"당신은 이곳에서 태어났소?"

"본래 옌볜 출신이오. 이곳에 온지는 10년쯤 되지."

"이 짓을 꽤 하신 모양인데, 그렇지요?"

"돈 자랑하는 한국 놈을 가끔씩 잡아서 가난한 동포들과 함께 돈을 나눠썼지. 놈들은 신고도 못하더구만. 대사관에서는 얼른 보내기에 바쁘고 아주 좋은 사업이요."

"이번에는 왜 그렇게 하지않소?"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당신까지 잡아놓으면 일이 커질 것 같아서. 노인들 몫을 얹히기에도 무리일 것 같고."

시선이 마주치자 장용수는 다시 웃었다.

"자, 안경을 다시 쓰실까? 돌아가실 시간이 되었지 않소? 애인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호텔에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넘어 있었다. 방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던 정현희가 반색하고 말했다.

"걱정했어요. 연락도 없어서."

"노인들은 다 확인했어."

이대진이 주머니에서 노인들의 신상명세가 적힌 종이를 꺼내어 보였다.

"모두 전쟁포로로 잡혀있던 노인들이 확실한 것 같아."

종이를 받은 정현희가 정색한 얼굴로 이대진을 보았다.

"20분쯤 전에 김경희씨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

움직임을 멈춘 이대진의 시선이 전화기로 옮겨졌다.

"이 방으로?"

이 방은 이대진의 방이다. 정현희는 이곳에서 전화를 받은 것이다. 정현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제가 잘못 했나요?"

그러자 이대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잘했어. 그런데 뭐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