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조국과 동포 (3)

기사입력 2000년 03월 06일 15시 11분


박장호가 이대진을 찾아온 것은 그날 오후 5시쯤이었다. 미리 연락을 했으므로 호텔 커피숍에는 이대진과 정현희가 나란히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마치고 앉았을 때 박장호가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본부에다 연락을 해보았더니 이대진씨는 우리 회사에서 꽤 알려진 분이시더군요. 놀랐습니다."

이대진도 박장호의 전화연락을 받고나서 서울 국정원의 김재선과 통화를 했다. 그래서 이쪽도 박장호에 대해서 조금은 안다.

"대사관에서 박선생님을 보낸 모양이지요? 골치 아픈 놈이니 쫓아내라고 하던가요?"

따라 웃으며 이대진이 묻자 박장호가 정색했다.

"이건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김부장님도 걱정하고 계십니다."

김부장은 김재선이다. 머리를 끄덕인 이대진이 커피잔을 들어 한모금 삼켰다.

"난 어떻게든 모셔 가겠습니다. 만일 안된다면 언론에 터뜨려서 국민의 심판을 받지요."

옆에 앉은 정현희가 발끝으로 이대진의 구두를 건드렸지만 말이 이어졌다.

"그 빌어먹을 외교정책이 맞는가 한번 따져 보겠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러자 의외로 박장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역시 김부장님 말씀이 맞군."

"날 쫓아내지는 못할겁니다. 난 어떻게 든 다섯 노인을 데려갈테니까."

"정의감이 강하시군."

"이런 일에 나서지 않는다면 방울을 달고 다닐 자격이 없지요."

"이미 보고를 했습니다."

다시 정색한 박장호가 이대진을 바라보았다.

"나도 소문을 들었지만 쉬쉬하는 바람에 증거를 잡지 못했지요. 그래서 이형을 만나러 오기 전에 정식 보고를 했어요."

그가 긴장한 이대진과 정현희를 둘러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곧 본부에서 지시가 올테니 협조합시다."

"역시."

감격한 정현희가 크게 뜬 눈으로 박장호를 보았다.

"나서는 분이 계실줄 알았어요. 이곳에서도."

"허어. 미인한테 칭찬을 들으니 몸이 붕 뜨는 것 같은데."

박장호가 이대진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놈들이 요구하는 돈은 어떻게 하실겁니까? 25만 위안이나 내라고 한다면서요?"

"벌써 오늘까지 1만 위안이 늘어났지요."

쓴웃음을 지은 이대진이 말했고 대답은 정현희가 했다.

"돈은 준비할 수 있어요."

"회사돈은 아닐테고 개인돈 입니까?"

"내가 리베이트를 먹은 돈이지요. 이른바 삥땅을 먹은 돈인데 이런 일에 써야지요."

이대진의 말에 박장호가 다시 웃었다.

"어째 회사원같은 분위기가 아닙니다. 이형은."

"선생님이 잘 보셨어요."

정현희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이분은 우리 보스예요."

"부럽습니다."

이대진과 정현희를 번갈아 보고난 박장호가 생각난 듯 물었다.

"이형, 북한 해외사업단 소속의 김경희를 아시지요?"

긴장한 이대진의 시선을 받은 그가 손끝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여자가 이곳 베이징에 있습니다. 송환된 줄 알았는데 다시 나타났어요."

정현희가 머리를 돌려 이대진을 보았다. 이미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셔져 있다. 헛기침을 한 이대진이 입을 열었다.

"그 여자가 이 일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 여자가 알면 득될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