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유재순 지금일본은… 공짜 없는 일본
기사입력 2000년 03월 06일 14시 39분
지난 주만 해도 이런 경우가 무려 세 번이나 있었다.
NHK TV에서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자료를 보내달라고 해서 한국신문 스크랩 자료를 보내줬는데 역시 통장 온라인 번호를 물어왔다. 담당자 말로는 3만엔(약 35만원)이 입금될 것이란다.
이렇듯 일본에는 무슨일이든지 공짜가 없다. 특히 시간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나 문화계종사자들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이 아닌 한국에 있었다.
인터뷰 섭외를 할 때마다 사례비를 달라는 그들의 말을 서울에 전하면 대개 십중팔구는 펄쩍 뛰었다. 한국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면서. 지금까지 전례가 한번도 없기 때문에, `인터뷰 사례비'라는 명목의 지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인터뷰는 꼭 해야한다니. 참 어처구니 없는 한국매스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는 할 수 없이 다시 한번 한국사정을 얘기하고 인터뷰를 해 줄 것을 간청한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대답.
"전에는 아는 사이니까 그냥 인터뷰를 했지만 다음부터는 안돼요. 다른 분도 아니고 일본사정을 너무도 잘 아시는 분이…."
일본TV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유명 재일동포가 한 말이다.
"한국사정은 한국사정이고 나는 일본인입니다. 그리고 프로 직업인입니다. 내가 당신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만큼 당신들도 내게 그 대가를 지불해야죠."
백번 지당하신 말씀. 하지만 일본에서 이 지당하신 말씀이 한국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엊그제, 나는 인터뷰를 신청했던 재일동포인 문화계종사자를 만났다. 그쪽에서 먼저 만나자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인터뷰료 5만엔을 불러놓고 내심 찜찜했던 모양이었다.
"일본에서 제법 활동하는 재일동포들이나 당신을 아는 일본인들을 만나면 자주 당신 얘기를 해요. 열심히 취재를 하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했다고요. 하지만 모두들 두 번은 곤란하다고 합니다. 누구보다도 일본사정을 잘 아는 당신이 연거푸 부탁을 해올때마다 모두들 난처하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그런 무리한 부탁을 해온다면서요."
그리고 덧붙였다.
"한국매스컴도 이제는 공짜로 인터뷰나 취재를 하려는 태도는 버려야 해요. 모두들 엔화 가치가 너무 높아서 그렇다고 말하는데, 엔가치가 떨어졌을 때도 사례비를 주지 않았어요. 왜 한국은 경제나 문화가 발전됐다고 하면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이런 시스템은 나아지지 않는 건가요?"
정곡을 콕콕 찌르는 재일동포의 지적에 나는 할말을 잃어버렸다(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방송사나 잡지사의 사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문화계를 대표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질책을 들어야 되나 은근히 화가 난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나의 생각이 얼굴에 나타난 모양인지 옆에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본비서가 한마디 했다.
"얘기가 통하는 분이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전에 한국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가 `완전히 일본인이 다 됐네'하고 빈정거리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반면 한국은 한국식대로 야단이었다. 일본식으로 취재하자면 취재비가 너무 많이 들어 회사가 망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송 혹은 지면을 통해 자신들이 보도되면 그 나름대로 광고효과가 있지 않느냐는 게 한국측의 항변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로 입장 정리를 했다. 되도록이면 인물인터뷰는 하지 않는다고, 그럼에도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는 똑같은 인터뷰 의뢰로 전화벨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일본의 사정을 열심히 설명하면서 앵무새처럼 반복하여 `사례비없이 불가함'을 얘기한다.
그러면 서울에서는 내가 원고료 대문에 그런 줄 알고 원고료 액수가 점덤 올라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전화통에 대고 악을 바락바락 쓴다.
"그럴 돈 있으면 정식으로 인터뷰료를 내요, 한국매스컴 체면 좀 서게."
하지만 쇠귀에 경읽기다. 오늘도 한 잡지사로부터 `철도원'의 주인공 다카구라 겐의 남자 주인공 인터뷰를 해달라는 전화가 왔다. 역시 인터뷰료 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