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사노바] 가짜 재미교포 사업가 (7)
기사입력 2000년 03월 05일 17시 01분
강성수와 김숙경은 토요일 오후 시내 중심가 모 특급호텔 커피숍에서 다시 만났다.
때는 초여름이었다. 김숙경은 노란 반팔 티셔츠에 얇은 하늘색 자켓을 걸쳐 입었고 하얀 바지를 입었는데 한결 젊게 보였다. 봉긋한 가슴에 잘록한 허리가 자켓속으로 비쳐 보였다.
헤어스타일이 방금 미장원에 다녀온 것 처럼 단정했으며 외모에 신경을 쓴 것으로 보아 데이트 하러 나온 노처녀 같았다.
“아름다우십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분과 함께 전시회를 관람할 것을 생각하니 잃었던 사춘기를 다시 찾는 기분입니다.”
“어머, 농담이 과하세요.”
김숙경은 싫지 않았다. 차 한잔을 마시며 가벼운 대화를 나눈뒤 전시장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으나 김숙경이 차를 몰고 나왔기에 함께 타고 갔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팜플렛을 사들고 작품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마 학교에 제출할 과제를 준비하러온 모양이었다.
널찍한 전시장에 비구상 작품들이 크기와 내용에 따라 조화를 이루며 걸려있었다. 둘은 바짝 붙어 속삭이며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시스티메틱 페인팅이군요. 작가가 개성이 강하고 고집이 센 사람인 것 같아 보입니다.”
“작품을 보시는 안목이 대단하세요. 작가는 직접 모르지만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개성이 강하대요.”
김숙경은 또 한번 놀랐다. 작품을 보고 작가의 성품을 알아낸다는 것은 보통 경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성수는 이에 대한 사전 준비를 해 갖고 왔다. 김숙경을 처음 만나던 날 함께 관람하기로 약속한 이 전시회를 이미 사전 답사하고 팜플렛을 구해 거기에 수록돼 있는 평론가의 추천사를 읽어보았다. 그리고 작가의 성품이 어떤지도 파악해 뒀던 것.
강성수는 과거 미술품 중간상을 한 적이 있는데 고가품을 팔아주겠다고 속여 그대로 착복했다가 교도소에 다녀온 일이 있다. 그래서 한국 화단의 구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게다가 김숙경을 헌팅하기 위해 시내 중심가의 서점에서 며칠동안 미술서적을 펼쳐들고 공부하고 필요한 용어나 화가 이름은 메모해 암기해 뒀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김숙경은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관람을 마친뒤 강성수가 제안했다.
“화창한 토요일 오후라. 게다가 미인과 함께이니 데이트 하고 싶어지네요”하고 농담을 던졌다.
김숙경이 눈을 흘기더니 “좋아요”했다.
“고국의 정경이나 볼겸 어디 시원한 곳으로 드라이브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래서 둘은 김숙경의 차를 타고 자유로를 달렸다. 토요일이었지만 자유로는 한산해 시원스럽게 달릴 수가 있었다.
“저기가 통일전망대예요. 강건너 보이는 곳이 북한이구요.”
“아, 그래요. TV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임진각에 들러 헬기와 대포 등 전쟁무기를 둘러보고 차를 돌려 통일로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김숙경이 제안했다.
“우리 분위기 있는 곳에 가서 차를 마실까요？”
“미인과 함께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김숙경은 차를 말로만 듣던 장흥으로 돌렸다. 장흥에 들어서자 여러가지 형태로 지어진 카페들이 즐비하게 나타났다.
그중 중년층 전용 카페로 들어갔다. 가수가 나와 20∼30년전 가요를 부르고 있었다. 커피를 시켜 마신뒤 김숙경은 가수의 노래가 흥겨운듯 콧노래로 따라 불렀다. 시간이 어느덧 흘러 저녁 7시가 됐다.
둘은 그곳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시켜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칵테일을 시켜 마셨다. 달착지근한게 음료수 처럼 마시기에 편했다. 한잔씩 한잔씩 더 마시게 됐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