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조국과 동포 (2)

기사입력 2000년 03월 05일 15시 18분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지?"

부대사 최학진이 물었으므로 노정수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탈북자 말씀입니까?"

"아니, 한국에서 온 자 말이야."

이맛살을 찌푸린 최학진이 혀를 찼다.

"어디에서 묵고 있냐구?"

"예. 인터내셔널 호텔에 있습니다."

"뭐하는 자야?"

"극동전자 특수팀장이던데요. 명함이."

노정수는 이대진한테서 들은 탈북자 문제를 보고한 것이다. 오후 2시여서 점심을 마치고 온 최학진의 얼굴은 혈색이 좋았다. 외교관 생활을 20년 가까이 해오면서 그는 한번도 승진에서 밀린 적이 없는 인물이다.

그것은 능력과 요령이 잘 배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운이 매번 좋을 리는 없으니까. 한동안 노정수를 노려보던 최학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사관 여직원한테서 그 정보를 얻었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그게 누구야?"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여직원 입단속을 철저히 시켜."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방안에 정적이 덮였는데 최학진이 손톱 끝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만 났다. 이윽고 최학진이 잇사이로 말했다.

"건방진 놈 같으니. 언론에 터트리겠다구? 협박하는 건가?"

"주의를 주었습니다. 안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놈이 외교를 장난으로 아나? 지금 한중 관계가 얼마나 중요하다구."

그쯤에서 노정수도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그가 책상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대사관에서 맡아 처리할 테니 귀국해서 기다리라고 해 보겠습니다. 언론에 알리면 일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다시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그놈은 지금 잘 풀리는 남북관계도 엉망으로 만들 수가 있단 말이야."

눈을 치켜뜬 최학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일은 엄청난 폭발 가능성이 있어. 잘되면 본전이고 실패하면 한중관계는 물론이고 남북관계가 몇 년은 후퇴하게 된단 말이야."

노정수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보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이 일을 가져다준 안동성에게 무럭무럭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놈은 외교부에 맞지 않는 `또라이'다. 그 놈 때문에 자신이 문제를 뒤집어 쓰게 된 것이다. 최학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 일은 박과장을 시키는 게 낫겠어. 박과장한테 그 놈을 만나도록 해. 그래서 당장에 귀국시키라구. 그리고 결과를 보고해."

"알겠습니다."

절을 하고 방을 나온 노정수는 아랫층에 있는 박장호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박장호는 국정원의 파견 요원이다. 30대 후반의 박장호가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고 있다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웬일이쇼? 내 방에 다 오구."

"문제가 생겼어요."

털썩 앞자리에 앉은 노정수가 지친 표정으로 이야기를 마치는 동안 박장호는 꼼짝않고 있었다. 그러더니 물었다.

"사건 덮을 거요?"

"덮는다기보다 시기를 기다린다고 봐야지요.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아요."

"본부에 보고는 했겠지요?"

"지난번에 구두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덮으라고 했겠군."

"길게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한중관계가 이런 일로 악화되면 안되지요. 북한은 가만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러니 날 더러 그자를 한국으로 보내라는 말이군."

박장호가 초점없는 시선으로 노영수를 보았다.

"그렇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