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세계 '엽기' 열풍
기사입력 2000년 03월 05일 15시 09분
`엽기(獵奇). 괴이한 것에 흥미가 끌려 쫓아다니는 일.'
꽤 어려운 단어다. 일상 생활에서는 그리 자주 쓰이지 않는 `엽기'가 사이버 세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어지간한 검색 엔진을 돌려보면 엽기에 관한 사이트나 웹 문서들이 1000여건을 넘어간다. 엽기 전문 사이트가 있는가 하면 사훈을 `엽기생활'을 내건 인터넷 회사도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엽기적인 것'을 강조하는 판이다.
단어의 뜻도 조금 변했다. `상상치 못한 황당한 일'이나 `유쾌한 파격'쯤으로. 이제는 인터넷이 고유한 유행어, 즉 `웹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대표적인 것이 딴지일보(http://ddanji.netsgo.com). 그들의 표현대로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싸이버 루머 저널'이라는 모토를 내건 패러디 신문이다. 내용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비아그라는 원래 우리나라의 것이었다' `가나다(캐나다)는 한국의 속국이었다'는 황당한 내용부터 기존 언론들이나 사회 현상을 날카롭게 파헤친 부분까지.
`마린 200마리와 질럿 100마리가 맞붙으면 어느 쪽이 이길까' 등의 엉뚱한 실험 결과를 내놓은 스타크래프트 엽기 길드(www.swreviews.com/yg)도 생겼다.
대부분 개인 홈페이지에 `엽기 코너'식으로 만들어지는 탓에 고정적인 엽기 사이트들은 드물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웹 문서들을 종합해보면 배꼽을 빼놓을 만한 것들이 많다. 얼마전에는 부셔먹는 라면 초코, 메론맛을 끓여 먹은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못했다는 `엽기 요리 리포트'가 올라왔다. 괴이하고 초자연적인 것을 다루는 곳도 많다. X-파일류의 심령사진이나 말도 안 되는 합성 사진을 올려놓는다. 심지어는 텔레토비도 자주 합성되는 엽기 대상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엽기일까. 이를 좋아하는 네티즌들의 성향을 가만히 따져보면 된다. 단순한 흥미거리나 자극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튀기 좋아하는 10대, 20대들의 입맛에도 딱 맞아 떨어진다.
결국 엽기는 패러디와 유머, 쇼크의 극치다. 극단적인 자기 PR이기도 하다. 엽기의 인기가 당분간 식지않을 것으로 보이는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전동희 기자 cance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