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희 '뮤지컬과 신앙이 내인생의 전부'
기사입력 2000년 03월 02일 14시 42분
금요초대석
뮤지컬의 전도사 윤복희(55).
그녀는 평소 인터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주 앉아 말문을 열어도 능숙하지도 않다. 간단한 질문에도 몸을 비틀고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인다. 그동안 수많은 인터뷰에 단련(?) 혹은 세련됐음직한데 말한마디 허투루 내뱉지 않으려는 듯이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그러나 일단 무대에 오르면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내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에너지는 젊은 배우들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그녀의 녹슬지 않는 실력과 에너지는 바로 뮤지컬에 대한 애정에서부터 시작된다. 후배 배우들이 `대장' 혹은 `해결사'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평소 뮤지컬 배우들로부터 `윤집사'(실제는 권사)로 불리는 그녀는 후배들의 카운셀러다. 작품뿐만 아니라 사는 문제까지 `윤집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일곱살때 뮤지컬 `크리스마스 선물'로 데뷔한 이래 한국을 비롯 미국 영국 등에서 활동하면서 세계적인 무대 매너를 배운 그다. 또 국내 귀국할 때 미니스커트를 입고 들어와 화제를 뿌리기도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뮤지컬 배우라고 강하게 말하는 윤복희.
오는 17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뮤지컬 하이라이트 빅쇼 `아이 러브 뮤지컬'에서 출연, 오프닝 `뉴욕 뉴욕'과 피날레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노래하면서 쇼를 이끌어간다. 그녀의 인생과 뮤지컬 이야기를 들어봤다.
-데뷔는 어떻게 했나?
▲일곱살때 아버지(윤부길)가 운영하던 부기우기쇼의 가족뮤지컬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대에 섰어요. 산타클로스의 주머니속에 들어있던 선물이 바로 저였어요. 선물로 나와 `아가씨와 건달들'의 한장면을 탭댄스를 추며 관객들에게 선보였죠.
-가족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는 경성음대를 거쳐 동경음대에서 유학했죠. `견우직녀' `콩쥐팥쥐'를 음악극으로 올렸죠. 대단했어요. 아버지는 부기우기쇼를 운영하셨는데 작품을 쓰고, 작곡하고, 편곡하고 미술디자인까지 다 하셨어요. 어머니(성경자)는 월북 무용수 최승희의 제자로 국악을 하셨고, 이모(성 마리아)는 클래식을 전공했죠. 어려서부터 클래식과 국악을 동시에 들으면서 자랐죠.
-본격적인 활동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했나?
▲미 8군에 `A1쇼'란게 있었죠. 악기연주, 노래, 춤, 흉내내기 등 일종의 퍼포먼서로 활동했죠. 여기에서 연기자, 가수로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지금까지 오게된 원천이죠.
-외국진출은 시작은?
▲63년이었어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동양리뷰공연'에 참가했어요. 성무, 부채춤, 발레, 재즈 등을 공연하는 무대였죠. 13명의 동료들과 함께 갔는데 저는 뮤지컬 `남태평양'의 주제곡을 부르면서 춤도 선보였어요. 이때 한 영국인이 저를 보고 런던에서 활동하자고 제의했죠.
-런던에서의 활동은?
▲64년 초 런던으로 갔죠. 스페인 독일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아일랜드를 돌며 순회공연을 했고 BBC `투나잇쇼'에 출연하면서 미국인 매니저의 눈에 들어 라스베이가스로 가게되었어요.
-라스베이가스에서의 생활은?
▲코리언 캐츠스란 이름으로 활동했죠. 밥 호프 쇼에 출연, 재즈의 거장 루이 암스트롱 등과 공연을 했어요. 환상적인 무대였지요. 어렵고 힘들면서도 한국인이 여기와서 뭔가를 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흥분하기도 했죠.
-성인으로 본격적인 서울 데뷔는?
▲67년 2월에 들어왔죠. 한국에서 리사이틀을 하는게 꿈이었어요. 서울에서 공연실황을 녹음한 음반이 히트했어요. `웃는 얼굴 다정해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 `마음이 변하기 전에' 등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거죠.
-미니스커트를 입고 귀국, 핫 뉴스메이커가 됐는데?
▲사회적인 화제가 됐는지 전 몰랐어요. 미니스커트는 그냥 옷이란 생각을 했지 그게 그렇게 큰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몰랐어요. 옷을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의상을 직접 만들어서 입는 경우가 많아요. 얼마전 그때 사진이 다시 CF로 재탄생했죠. 당시 사진 한장 제공하고 꽤 많은 로열티를 받았어요.(웃음)
-결혼생활은?
▲69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죠. 72년부터 별거했고 서류상으론 80년에 이혼했죠. 제 실수가 컸어요. 라스베이가스 공연계약엔 아이를 가지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어 아이를 지운적도 있어요. 죄 많은 여자죠. 인생을 살면서 후회되는 것은 이성관계의 실수인 것 같아요. `그쪽'(남자)은 끊고 살아요. 그러나 잃은 게 있으면 또 다른 것이 그 곳을 메워 오는 게 인생인것 같아요. 하느님과 뮤지컬이 그것이에요.
-77년 `빠담 빠담 빠담'으로 데뷔했는데?
▲현대극장에 들어갔어요. 프랑스의 전설적인 여가수 에디 트 피아프의 일대기를 담은 `빠담…'이 본격적인 데뷔작인 셈이요. 대박이 터졌어요. 몰려드는 관객들을 보면서 흥분했죠. 이후 `피터팬' `사운드 오브 뮤직' `…수퍼스타'등에 출연했죠.
-20년 가까이 마리아란 역을 많이 맡았는데?
▲그래요. 80년 초연한 `…수퍼스타'에서 마리아를 맡은 이후 재공연에서 어김없이 그 역을 맡았죠. 다른 작품인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마리아역을 맡았어요. 하느님이 주신 배역이 아닌가 생각해요.
-뮤지컬 제작자로도 활동했는데?
▲78년 `춤추는 함대'를 제작했죠. 대한극장@장충체육관으로 이어진 공연은 대성공이었요. 제작, 연출, 출연 1인3역을 했지요. 그때 입장료로 들어온 돈을 3단으로 깔고 잤어요. 그 다음에 제작한 모노 뮤지컬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대박이었죠.
-뮤지컬인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때는?
▲90년 초 `캐츠'공연이었죠. 3년 동안 공연하고 배우들이 가져간 돈은 1인당 10만원이었어요. 모두들 오기와 자존심으로 뭉친 무대였죠. 대관료를 지불하지 못해 결국 집을 저당잡히고 그 돈을 물었죠.
-그때 심정은?
▲음,자랑스러웠죠.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와 스태프진들이 근성과 프로의식을 배운 것으로 족했어요. 그리고 깨달았어요, 뮤지컬 연기자나 스태프는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란 것을요.
-뮤지컬의 대모라고들 부르는데?
▲후배 배우들이 저를 보면 군대식으로 경례를 하면서 대장이라고 불러요. 또 해결사라고도 하구요. 후배들이 고민이 있을때 저랑 상의해서 그런 말이 생긴 것 같아요. 대모라는 말은 모 신문사 기자가 붙여준 이름이구요.
-빅쇼 `아이 러브 뮤지컬' 출연소감은?
▲처음부터 굉장히 느낌이 좋았어요. 쟁쟁한 후배들이 자기를 조금씩 양보하고 희생하면서 이 무대를 같이 만들려고 하는 노력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감사하게 느껴져요. 이런 형식의 대형 뮤지컬축제는 이제 시작이지요. 이번 무대는 우리 뮤지컬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될거에요.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창작 뮤지컬이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뮤지컬이란 말 대신 우리식의 적절한 용어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구요. 클래식 발성법에 고무신을 신는 것 같은 작품은 곤란하죠. 우리의 모든 것이 잘 조화된 좋은 뮤지컬이 탄생하길 기대해요. [박용재 문화부장 eastsea＠]
■약력:1946년 서울출생. 한양여고, 서라벌예대 2년 중퇴. 7세때 뮤지컬 `크리스마스'로 활동 시작. 63년 4인조 보컬그룹 코리언키튼즈 결성, 라스베가스에서 활동, 영국 BBC `투나잇쇼' 출연, 미국 CBS@TV `보브 호프 크리스마스 특집' 출연. 67년 `웃는 얼굴 다정해도'로 국내가요계 데뷔. 77년 `빠담 빠담 빠담'으로 뮤지컬 데뷔. @루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피터팬' `다윗'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광개토대왕'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 97년 자전적 고백서 `나 있는 그대로'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