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의 사랑과 우정 담은 영화'산책'
기사입력 2000년 02월 29일 14시 39분
이정국 감독의 `산책'은 그의 전작 `편지'에 이은 `무공해 영화'의 연작 시리즈라 할 만하다.
박신양 최진실 주연의 `편지'가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그렸다면, `산책'은 보다 넓은 의미의 사랑을 담고 있다. 남녀의 사랑, 동료와의 우정, 가족간의 사랑, 삶에 대한 사랑 등.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른바 386세대다. 하지만 이감독은 386세대가 살아온 `시대적 소명'에 대해선 굳이 목소리를 높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이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는다.
영화속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그 나이쯤에 있을 만한 일상적인 고민들이 몇가지씩 있다.
레코드숍을 운영하는 남자주인공 영훈(김상중). 그에게는 마음을 열지 못했던 첫사랑에 대한 아쉬움이 있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소홀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다.
그의 친구인 공무원 세진(양진석). 그에게는 단란한 가정이 있지만, 직무상의 청탁 때문에 고민거리가 생긴다.
진영(이명호)은 이혼남. 딸을 데리고, 외국으로 가려는 전 아내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학교 선생님 홍철(정호근). 결혼이 소원이지만, 마음에 맞는 상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영화는 이들이 이런 각자의 고민과 바쁜 일상속에서 연례행사처럼 치러온 음악 콘서트를 크고 작은 난관속에 열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영훈의 레코드숍에 느닷없이 찾아들며 점원으로 일하는 연화(박진희)란 여자의 에피소드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산책로를 사진 찍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끼여 든다.
인간들 사이에 놓여있던 벽과 갈등이 하나하나 풀어지는 과정을 때론 아름답게, 때론 뭉클하게, 때론 눈물나게 그린다. 이감독은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애정을 듬뿍 쏟는다.
`첨단 테크놀로지'와 `섹스와 폭력'을 모두 배제한 영화.
`편지'에서 푸른 수목원을 배경으로 사랑이야기를 풀어냈던 이감독은 `산책'에서도 푸른 숲과 산책로를 배경으로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4일, 서울, 신촌그랜드, 아카데미21,브로드웨이 등)
[안영준 기자 j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