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강우석 레디고 '美서 주가 치솟는 이명세감독'
기사입력 2000년 02월 28일 14시 29분
며칠전에 미국 LA를 다녀왔다.
한국영화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 외화 구매에도 손을 댄(배급망 구축을 위해) 나는 LA에서 `U－571'과 `스크림 3'의 시사회에 참석했다.
시사회 참석자들은 이 영화를 수입한 사람들로, 서양인이 대부분이었고, 동양인은 나와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 그리고 몇명의 중국인 뿐이었다.
`구매를 결정한 두 영화가 재미있어야 할텐데…'란 긴장속에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외국인이 우리 일행을 찾아왔다. 유태계로 미국에서 꽤나 유명한 딜러이자 제작자인, 서밋의 대표 패트릭이었다.
그는 나와 정태원 대표가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제작자인 줄 아는지, 모르는 지 "미스터 리(이명세 감독)를 잘 아느냐?"고 물었고, "이감독을 꼭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여기에 "이감독과 꼭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까지 표현했다.
왜 그가 이감독에게 이토록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선댄스 영화제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상영되면서 이감독이 `선댄스의 스타'로 떠올랐다는 것. 탁월한 스타일리스트인 이감독의 작품이 관객취향 면에서도 동서양을 넘나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서, 순간 당황했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잠시 상념에 빠져있을 무렵, 영화가 시작됐고, 나는 이감독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잊은채 영화에 몰두했다.
구매자인 나와 정대표는 시사회가 끝난 후, 숙소로 가는 차안에서 "잘 되겠어" 등등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정대표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 통화 내용을 이랬다.
미국 뉴욕에 있는 저명한 에이전시에서 이감독의 매니지먼트를 해주기로 결정했다는 것. 그 에이전시에선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아메리칸 필름 마켓에서 상영하게 되면, 이감독의 차기작 투자자를 세계에서 모집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을 보였다고 한다. 우리에겐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프린트를 빨리 미국으로 공수해줄 것을 요구했다.
더욱 놀란 사실은 `양들의 침묵'의 조나단 뎀 감독이 이감독의 차기작에서 이그제커티브 프로듀서(제작 총 지휘)를 맡겠다고 자청했다는 것. 그는 자신이 이 역할을 맡으면 세계 배급망을 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코멘트도 했다고 한다.
나는 하루에 두차례씩이나 `미스터 리'의 위력을 확인하면서, 마치 `철퇴'를 맞은 기분이었다.
예전에 나는 할리우드에서 `투캅스'와 `마누라 죽이기'의 할리우드판 리메이크를 위해, 미국을 10여차례 오가며 유력 프로듀서들과 접촉하다가, 결국 포기한 일이 있었다. 한국의 감독이 할리우드 자본을 갖고, 할리우드 배우와 스태프를 데리고, 할리우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명세 감독의 주가가 미국에서 치솟고 있는 것은 분명 축하할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가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홍콩의 오우삼 감독을 부러워만 할 것인가.
나는 잠시 동안의 시기심을 버리고, 이명세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오우삼을 능가하는 스타가 되기를 기원했다. 그것은 미국에서 박찬호와 박세리가 성공한 것과 견주어도 조금도 손색없는 대사건이 될 것임이 틀림 없었다.
나는 꼭 그런 날이 오리라 확신한다.
[P.S] 내가 이감독의 성공을 바라는 데는 사실 또한가지 이유가 있다. 이감독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끝내고 나와 한작품 더 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이감독, 절대 그 약속 잊어버리면 안돼! 기억 못하면 배신이야,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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