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현장르포] '부킹' 성문화의 신 현장
기사입력 2000년 02월 28일 14시 10분
부킹-성문화의 신 현장.
부킹(Booking).
예약이라는 뜻.
그러나 2000년 한국에선 `남녀간의 갑작스런 만남'의 뜻으로도 더 많이 쓰인다.
20대 청춘들은 디스코텍과 나이트클럽에서, 30~40대는 카바레에서 부킹을 한다. 그 이상의 연령대에서 한때 열풍처럼 번졌던 `묻지마 관광'은 단체부킹인 셈.
과연 부킹은 가벼워진 성문화의 반영인가? 각 세대별 부킹의 현주소를 추적했다.
■부킹 현장
서울 강남에서 물좋은 곳중 하나라는 A나이트클럽. 취재팀이 들어선 시간은 금요일 밤 오후 11시40분.
현란한 조명, 음악소리가 귀를 찢는다. 20여개의 룸은 벌써 만원. 웨이터 이연걸. 취재진과 동행한 일행중 한명과 낮익은 그는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그의 첫 마디. "골치 아파요." 전화만 하고 오지 않는 여자 손님들이 너무 많아 `부킹'을 시켜주기가 어려운 상황. 그의 옆을 `작은 이연걸'이 스쳐지나가며 소리친다. "4번 룸 호출이에요."
다른 손님은 다 피해도 이 방은 안 들를수가 없다. 30대 초반의 손님 3명이 고급양주 J&B 제트를 마시고 있는 방. 이들은 홀 손님 매상의 2~3배를 올려주는 그야말로 `알짜손님'. 이들이 거래하는 웨이터를 바꾸면 손해가 막심하다.
스테이지가 보이는 테이블에 취재팀이 자리를 잡자마자 옆 테이블에선 신경전이 벌어졌다. 웨이터 조성모가 짧은 치마의 20대 초반 여성의 팔을 잡아끈다.
"왜 이래！ 나 부킹하러 온거 아냐." 웨이터의 손을 연신 뿌리치는 품이 짜증스럽다는 티가 역력하지만 조성모는 집요하다. "미안해. 오늘 바빠서 신경 못썼어. 이번엔 진짜 킹카야, Z3 타고왔어."
다시 한번 손목을 잡아끌자 여성은 못이기는 척 하며 따라 일어선다. "친구 두사람과 함께 왔는데 둘은 어디서 잘 어울렸는지 보이지 않고 자기는 부킹이 잘 안돼 아마 `열을 받은' 모양"이라는게 조성모의 뒷 설명.
조성모뿐만 아니다. 블루스타임을 맞아 이미 나이트클럽 곳곳에선 웨이터들이 여자손님들의 손목을 잡고 홀을 누비고 있었다.
홀 한쪽 끝에는 남자 손님 둘이 앉아있다. "아 오늘 정말 똥물이네." 25세쯤 되어보이는 말쑥한 쑥색 정장차림의 남성이 짜증을 내자 옆의 남자가 말린다. "기다려 봐. `선수들'이 올 때가 됐어." "젠장. 이러다 오늘 `새' 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
룸에 들어갔다 한참만에 취재팀 옆으로 되돌아온 이연걸. "30분째 여자 구경을 못하고 있다고 해 오늘은 술값 내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어요. 마침 `작은 이연걸'이 여자애 둘을 끌고 온 바람에 십년감수 했죠."
이연걸은 너털웃음을 지은 뒤 다른 방으로 향했다. 그는 어딘가에 연신 핸드폰 자판을 눌러댔다.
■30초의 승부 부킹
`부킹'이 `예약'과는 다른 뜻으로 사용되게 된 것은 80년대 초. 당시에는 디스코텍이나 나이트클럽에서 `따로 따로 온 남녀들이 서로 합의하에 맺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즉 `2차 부킹' 또는 `애프터(놀러 온 업소를 나서 다시 만나는 것) 부킹'의 약어였던 셈. 그러던 것이 웨이터가 중간에 끼어 남자 그룹과 여자 그룹을 연결해 주는 것으로 바뀌고, 90년대 초부터는 아예 웨이터들이 여자 손님들을 데리고 다니며 남자 손님들의 테이블에 `앉히는' 것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강남의 1류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20대 초반 대학생들이 많이 드나드는 강남역 주변, 10대들의 출입 단속과 시비가 끊이지 않는 청량리 영등포 수유동 등 부심지 유흥가에 이르기까지 나이트클럽이면 `부킹'은 기본 사양이다.
서울의 경우 H호텔의 P 등 `웨이터가 없는' 극히 일부의 클럽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나이트클럽이 `부킹'을 매개로 손님을 모으는 형편.
남자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주문을 마치면 술과 안주가 나오기 전부터 부킹이 시작된다. 웨이터들은 부지런히 여자들을 잡아 끌어 남자 손님들의 자리에 앉힌다. 가끔은 `안 간다'며 도리질을 하는 여자 손님들과 웨이터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웨이터 N씨는 "어차피 다 오게 돼 있다. 부킹 안 할거면 뭐하러 나이트에 오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여자 손님들이 거절하지 않는 것은 싼 술값에 일류 나이트클럽에 올수 있다는 매력 때문. 남자 손님들이 최소한 1인당 10만~15만원의 술값이 필요한 반면 여자 손님들은 테이블당 10만원 내외면 충분하다.
업소마다 차이가 있지만 여성 전용 할인권 등을 배포하는데 이런 특권을 사용할때는 `부킹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묵시적인 합의가 이뤄진다.
경력 10년 이상의 웨이터들은 90년대만 해도 일행중 남자가 한명이라도 있으면 여자들은 부킹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최근에는 남자 손님에게는 다른 테이블의 여자 손님을 데려다 주고, 나머지 여자들도 제각기 부킹을 한다.
물론 웨이터들은 데려다만 줄 뿐, 남녀 손님들을 `엮어' 주는데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눈인사가 오가고, 대화가 오간다. 부킹에 익숙한 사람들은 `처음 30초'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30초 안에 확실한 임팩트를 주지 않으면 그냥 일어서서 가 버립니다." 치과의사 C씨(30)의 말. "30초 안에 외제차 열쇠를 흔들어 보여주든가, 뭔가 매력을 제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죠."
여자에게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빠른 시간내에 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진리다.
■부킹과 연예인
나이트클럽에서 룸에 앉은 손님과 홀에 앉은 손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홀에 앉는 경우가 대부분 용모에 자신이 있거나 주머니가 가벼운 20대 초반 손님들인 반면 룸에는 상대적으로 재력이 있는 30대 초반이거나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이 앉는다.
A업소의 한 웨이터는 이렇게 말했다. "연예인들은 춤을 추기는 커녕 화장실에도 안가요."
이들의 룸에는 특별히 엄선된 여자 손님들이 공급된다. 대부분 `연예인'에 눈이 먼 경우라 드물지 않게 남자 스타들에게 `몸을 던져' 물의를 빚곤 한다.
영화배우 L씨는 부산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부킹으로 만난 여자 손님이 "함께 가겠다"며 밖에까지 따라 나와 차 문에 매달린 것을 뿌리쳤다가 폭행죄로 고소당하는 봉변을 겪었다.
일부 여자 연예인들은 이례적으로 `남자 부킹'을 즐긴다. 그런데 일부 몇몇은 습관적으로 사고를 쳐 `요주의 인물'로 등록되기도 한다. 톱스타 K양은 요즘은 뜸하지만 유명 나이트클럽에서 대표적으로 `사고'를 쳐 왔다. 염문설이 돌던 영화배우 L씨에게 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술에 취해 선배를 몰라보고 행패를 부리다 톱가수 K씨, MC N씨 등에게 `경을 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밖에도 탤런트 K씨, 영화배우 C씨 등이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자들과 만취한 모습을 보여 이미지 훼손을 입었다. 이때문에 신인 여자 연예인의 매니저들은 웨이터들을 통해 "나타나면 바로 연락해달라"는 비상망을 구축해놓고 있다.
■부킹의 결과는？
대부분 연락처를 교환하거나 장소를 옮겨 `2차'를 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곧바로 침대로 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유명 나이트클럽은 호텔을 끼고 있기 때문에 아예 웨이터를 통해 방을 잡아 올라가게 된다.
부킹온 여자 손님과 `뜨거운 밤'을 보낸 적이 있다는 회사원 K씨(30). 그는 "방에 올라갔다 내려와 조용히 각자의 일행과 합류했는데 나이트클럽들이 새벽 6시까지 영업을 하다 보니 위층 방에 갔다 내려온 여자 손님과 새벽까지 계속 얼굴을 마주쳐 난감한 적도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서울 강남 한 업소의 지배인 J씨. 그가 털어놓는 작년 자신의 업소에서 웨이터들과 함께 목격한 이야기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웨이터들이 자꾸 와보라고 하길래 남자 화장실에 갔죠. 밖으로 소리가 다 들리게 요란한 정사를 벌이고 있었고, 문틈과 옆 화장실 너머로 서너명의 남자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두사람은 신경쓰지 않고 `일'에만 열중하더군요. 그리고 소문을 듣은 사람들은 여성의 얼굴을 보려고 화장실 앞에서 줄을 늘어 섰죠. 그 여성은 태연하게 V자를 그리며 나왔어요." 그 여성은 그 후에도 그 업소에 단골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기성세대의 부킹
`부킹 문화'는 전염성이 강하다. 당초 일부 호텔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번지기 시작한 `부킹 문화'는 이제 30대 중반 이상을 고객으로 하는 카바레까지 확산됐다.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명성을 날리고 있는 강남 B호텔 카바레를 찾았다.
수요일 밤인데도 300여평의 실내는 빈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성업중이었다. `카바레'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탱고나 트로트는 오간데 없다. 20인조 악단과 8인조 그룹사운드가 번갈아 연주하는 디스코 풍 음악에 맞춰 플로어를 가득 메운 남녀 손님들이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맥주 기본은 9만6000원, 양주 기본이 15만6000원으로 호텔 나이트클럽의 1/3 정도 가격. "부킹은 안 시켜주느냐"는 질문에 담당웨이터는 "조금만 기다리라. 블루스 타임이 되면 여자 손님들이 많이 내려온다"고 설명했다.
30분쯤 지나자 첫번째 부킹이 이뤄졌다. "여자분이 부끄러워 하니 남자분이 자리로 가시라"는 웨이터의 권유.
합석하게 되자 제법 세련된 분위기가 풍기는 L씨(37)는 "친구들과 함께 왔다. 아저씨들이 `초짜'인 것 같아 불렀다"고 입을 열었다. L씨는 "유부녀냐"는 질문에 "갔다 왔다(이혼했다는 뜻)"며 웃음을 터뜨렸다.
L씨는 "남자 생각이 나면 가끔 온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재혼할 생각도 없고, 연락만 내 쪽에서 하면 오히려 깨끗하다. 이 나이에 어디가서 남자를 만나 사귀겠느냐"고 되물었다.
자신의 직업을 룸살롱 마담이라고 밝힌 A씨는 "호스트바도 가끔 가지만 캬바레는 `색다른 맛'이 있어 좋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B호텔 외에 광장동 C호텔, 일산의 D캬바레 등이 `부킹의 명소'로 꼽히는 등 대부분의 카바레들도 춤보다는 `부킹'위주로 개편이 이뤄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웨이터 T씨는 "나이트클럽에서 밤낮 부킹해 봐야 데리고 자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여기선 부킹 3~4번이면 바로 방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부킹의 명암
부킹을 통해 `화려한 만남'을 꿈꾸는 남녀들은 많다. 하지만 그 결과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4월8일. 여자 손님 A씨(23)는 한 나이트클럽에서 부킹을 간 자리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인사불성이 됐다. 부킹 파트너들이 앞다퉈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나섰지만 웨이터 김모씨는 이들을 따돌리고 인근 호텔에 방을 잡아 A씨를 재우고 A씨의 친구들까지 안심시켜 돌려 보냈다.
그러나 딴마음을 품었던 김모씨는 다시 호텔 방으로 돌아가 파트너로 가장하고 A씨를 성폭행했다가 다음날 술이 깬 A씨에 의해 구속됐다. 부킹의 부정적인 면을 압축해서 보여준 사건.
서울 남서울병원 정신과 신승철원장은 "개인적으로 성문화에 대한 접촉 가능성이 무한대로 확장되며 `내 몸은 내 맘대로 한다'는 의식이 확산돼 1회성 성문화가 범람하고 있다"며 "열린 성의식에 대한 교육 채널이 다양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부킹이 뭐가 나쁘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부킹에서 만난 여성과 6년전 결혼한 방송사 PD L씨(35). 그는 "부킹은 미팅이나 다를 것이 없다"며 "`부킹=섹스'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 문제"라는 입장이다.
광고회사 AE로 일하고 있는 H씨(36). 그도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흡수하기 위해 월 1~2회 정도는 나이트클럽에 들르는 케이스. H씨는 "부킹을 통해 만난 20대 여성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디어를 보충한다. 술자리인 만큼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다"며 부킹을 옹호한다.
여자들의 입장도 마찬가지. 현재 부킹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6개월째 사귀고 있다는 K양(22·S대 4학년)은 "여자들이 손목 끌려 다니는 것 때문에 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자들끼리 놀러 온 테이블에 남자들이 와서 버티고 안 가는 것 보다는 낫다"고 주장한다. 부킹 시스템이 여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체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건전하다는 것.
그러나 K양도 "가끔 고주망태가 되어 남자들의 노리개가 되는 여자를 보면 한심할때가 있다"며 "친구들에게도 남자친구를 `부킹으로 만났다'는 얘기는 차마 할수 없어 그냥 친구 소개로 만난 것으로 둘러대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후기]
부킹이라는 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세가지였다. 귀가 솔깃할만큼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 타락한 젊은 세대를 떠올리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 그리고 "대체 부킹이 뭐야？"라고 묻는 사람이었다.
부킹은 불법이 아니다. 또 두 남녀 사이의 합의에 의해 이뤄진다. 외모와 값비싼 상표를 무기로 유혹하고 유혹당하고, 소중하게 지키고 가꾸어야 할 성을 너무 가볍고 쉽게 허용하는 것은 분명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어쨌든 부킹이 새로운 `만남 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은 것은 현실이었다. 남의 눈치나 이목에 구애받지 않는 `개성세대'일수록 부킹을 당연시 했다. 또 나이트클럽에서의 부킹이 모두 성관계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는 시각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오히려 젊은이들의 모습을 흉내내는 노욕(老慾)에 빠진 기성세대들의 모습들이 더욱 문제로 지적됐다. 겉으로는 젊은 층의 타락을 개탄하면서 그 자신들도 부킹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야말로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은 "그나마 부킹이 아니면 어디 가서 사람을 만나겠느냐"고 했다.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의 급변하는 의식변화와 현실은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고, 고전적 보수잣대만 들이 댄다"고도 덧붙였다.
20대건 40대건 성인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인간관계를 풍성하게 할수 있는 공간은 필요하다.
먹고 살기에 바빠 건전한 사교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주소가 아닐까？
[SC 현장 르포팀]
이유현 기자 youlee＠
송원섭 기자 fivecard＠
김남형 기자 star＠
김경민 기자 kyung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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