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안도현-이흥재씨 '그리고 구멍가게가…' 출간
기사입력 2000년 02월 27일 15시 03분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장터. 그곳에는 우리네 민초들의 기쁨과 슬픔, 눈물과 근심, 서러움과 흥겨움이 한데 어우러져 출렁거린다. 깎느니 마느니 목청 높은 흥정이 있고, 권커니 잣커니 막걸리 잔치가 흥겹고, 고함과 삿대질과 멱살잡이가 벌어진다. 무엇보다 국밥처럼 따뜻한 인심이 있다.
오늘날 장터 풍경은 어떨까. 아니, 아직도 오일장이 서기나 하는 것일까. 있다. 시인 안도현, 사진작가 이흥재씨의 발길을 따라가 보자. 그들이 아득한 추억 속에나 남아 있는, 신세대라면 한번도 못가봤을 시골 장터로 안내한다.
이씨의 사진 50여장과 안씨의 정겨운 글을 함께 수록한 `그리고 구멍가게가 생기기 전에는?'(실천문학). 시골 장터의 모습을 에세이와 사진으로 전해주는 책이다.
이씨의 사진은 89년부터 99년까지 전라도 각지의 장터를 돌며 찍은 것들이다. 전주, 남원, 순창, 임실, 무주, 강진, 구례 등 제법 큰 도시부터 운봉, 동계, 쌍치, 줄포, 인월 등 작은 시골마을까지 남도의 장터 풍경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사진은 모두 흑백이다. 그 속엔 뻥튀기 아저씨, 머리에 짐을 이고 집으로 가는 아낙, 흐뭇한 표정으로 돈을 세는 할머니,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국수집, 버스를 기다리는 삼베옷 할아버지가 들어 있다. 질박한 삶의 모습들이다.
등장 인물들이 하나같이 노인들인 것도 특징. 전자상거래와 백화점, 슈퍼마켓의 등장으로 점점 사라져 가는 시골 장터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굵은 주름살에서 신산스런 삶을 헤쳐온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안씨는 "신이 도시를 만들기 위해 하나 둘 장터를 빼앗아 갔고,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이 힘들고 외롭게 됐다"고 안타까워 한다. 이 책은 그런 시골 장터를 위한 헌사다.
한편 이씨는 29일까지 서울 인사동 대안공간 풀(02-735-4805)에서 장터 사진 전시회를 연다.
[임정식기자 d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