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여성 금지구역과 오사카부 지사의 싸움
기사입력 2000년 02월 27일 14시 54분
요즘 일본 언론과 국회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 이유는 코미디언 출신의 요코하마 노코 오사카부 지사가 선거운동원 여대생을 성희롱한 죄로 유죄를 받으면서 자진 사퇴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보궐선거가 치러져 이번에는 여성이 오사카부 지사로 당선됐다.
그 여성은 오타 후사에씨(太用房江．48).
그녀에게는 늘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히로시마 출신으로 중학교 때부터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독주회를 열만큼 피아노연주 실력도 뛰어난 재원이었다.
도쿄대학을 거쳐 고시에 합격, 1975년 통산성에 입성한 그녀는 최초로 부장직까지 올랐다. 동료들과 어울려 스스럼없이 술도 잘 마셨던 그녀는 일반적인 일본의 여성상과는 거리가 먼 서글서글한 성격의 성격의 소유자. 남자 못지 않은 호탕함으로 정평이 나 있는 여성이었다.
바로 이같은 성품 때문에 이번 보궐선거에서 오사카 시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물론 97년부터 2년간 오카야마현에서 부지사를 지낸 경력을 인정받은 면도 있지만, 그녀가 오사카시민들에게 강하게 어필했던 것은 역시 호방한 성격이었다.
"오사카의 만성적인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과감한 행정개혁과 경기대책을 동시에 추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여성을 약자로 보는 시각이 사라졌으면 합니다. 고도성장 사회가 가져온 남성중심적 사고를 고치는 데는 여성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포부를 밝혔던 오타 신임지사, 당선소감부터 여성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던 일본인들은 그녀의 한 마디에 아연했다.
"오는 봄에 열리는 스모대회의 우승자에게 직접 상을 주고 싶습니다."
이 한마디에 그야말로 일본열도가 들끓기 시작했다. 지난 8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오타 신임지사는 우승자에게 주는 오사카지사상을 자신이 직접 수여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지금까지 봄에 열리는 스모대회의 우승자에 대한 시상식은 늘 오사카지사가 해왔다. 그러므로 오사카 지사에 당선된 오타씨의 이같은 발언은 당연히 수행해야 할 의무를 수행하겠다고 공표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본열도가 들끓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타 신임 지사가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모협회는 물론 국회로까지 문제가 비화됐다. 이에 국회는 그야말로 `모르쇠'반응. 한 마디로 오타 지사와 스모협회간의 문제라고 딱 잡아 뗀 것이다. 이에 사기 충천한 스모협회.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여성이 도효(스모경기를 하는 원형의 모래밭) 위에 올라 간 적이 없다. 스모협회는 이같@은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여성인 오타 오사카 지사가 직접 상을 주기 위해 도효에 올라오는 것을 절대로 허락할 수가 없다."
실제로 일본은 200여년간 스모경기를 활성화하면서도 여성이 도효에 올라오는 것만은 금기로 여겨왔다. 뿐만 아니라 `스모베야'(도장)에 이른 아침 오는 것도 부정을 탄다고 헤서 역시 금기사항 중 하나였다. 이를테면 스모판은 남잦들만의 성역이었던 것이다. 다른 스포츠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연히 여성들에게도 오픈됐는데 유독 스모만큼은 그 문이 굳게 닫혀진 채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본 여성들이 전혀 그 문을 노크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난 1990년 당시 여성최초의 관방장관이었던 모리야마 현 중의원도 도쿄에서 열리는 스모대회의 우승자에게 총리를 대신해서 직접 상을 수여하고 싶다고 공식적인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도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스모협회의 강한 거부로 그 꿈이 실현되지 못했다.
현재 일본국민들의 반응은 오타지사가 약간 우세한 편. 이젠 여성에게도 시대가 변한만큼 개방해야 한다는 의견이 47%, 개방반대가 37%로 나타났다(아사히 신문). 아무튼 내달 12일이면 드디어 스모대회가 개막된다. 과연 그 때 오타지사는 우승자에게 오사카지사상을 직접 수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모리야마 의원처럼 불발탄으로 끝날 것인가. 이 문제로 지금 일본열도는 몹시도 시끄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