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투쟁 (25)
기사입력 2000년 02월 23일 14시 10분
"그래요? 얼마나 들었습니까?"
"1인당 5만위안 정도."
힐끗 이대진의 눈치를 본 장용수가 의자에 등을 붙이며 정색했다.
"우린 단동에서부터 그 영감님들을 보호하고 왔단 말입니다. 공안을 따돌리려고 열차도 못타고 차를 빌린데다가 어떤때는 이틀동안 산길로만 걸었어요. 그리고 벌써 보호하고 있는지 한달이 된단 말입니다."
"우리라고 하셨는데."
이대진이 탁자 위로 상반신을 기울여 장용수를 보았다.
"몇분이 이런 훌륭한 일을 하시는 겁니까?"
"다섯명이지요."
어깨를 편 장용수가 이대진의 시선을 받았다.
"모두 손해가 크단 말입니다. 1인당 5만위안도 더 썼지요."
잠자코 있던 정현희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얼굴에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역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5만위안이면 5000달러 가까운 돈인데다 중국인 평균 봉급자의 봉급 10년 분이 넘는 것이다. 정현희에게 시선을 주었던 이대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돈 문제는 다시 상의하기로 하고 먼저 탈북자들을 만났으면 하는데요. 그것이 정상 아닙니까?"
"아니. 돈 문제부터 먼저 결정을 하십시다. 그리고나서 만나 보시지요."
그러자 정현희가 참지 못하고 나섰다.
"이보세요. 우리가 선생님을 어떻게 믿습니까? 지금 흥정을 하시는 것 같은데 물건도 안보이고 값부터 정하자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어허, 이 아가씨가."
놀란듯 눈을 크게 뜬 장용수가 도움을 청하듯 이대진을 보았으나 이대진의 시선은 국수그릇에 내려져 있었다. 장용수가 정현희를 쏘아보았다.
"전쟁포로였던 탈북자가 다섯명이나 된단 말입니다. 데려가지 않겠단 말이오?"
"만나보고서 결정하겠어요."
매몰차게 말한 정현희가 가늘게 뜬 눈으로 장용수를 보았다.
"선생님한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사기꾼이 많다고 들어서요. 그리고 우린 민간 조직이어서 꼭 데려가야 한다는 의무도 없습니다."
"아니, 내가 사기꾼으로 보인단 말이요?"
이제는 장용수가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방에 있던 중국인 주인이 힐끗 이쪽을 보았다가 다시 고기를 튀겼다.
"선생이 말씀해 보시오. 내가 사기꾼 같습니까?"하고 장용수가 이제는 이대진에게로 몸을 돌렸다.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자 이대진이 눈을 껌벅이며 장용수를 보았다.
"먼저 그분들을 만나게 해 주시지요. 그래야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요."
"만나지 못한다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때 대답은 또 정현희가 했다.
"그만 두겠어요. 자, 시간 허비할 것 없이 일어나십시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정현희가 이대진을 내려다 보았다.
"뭐 하세요? 일어나세요. 어서."
"어어. 참."
이대진이 난처한 듯 이맛살을 찌푸리자 정현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가 뭐랬어요? 쓸데없이 시간만 죽일 것 같다고 했지 않아요?"
입맛을 다신 이대진이 엉거주춤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었을 때였다. 장용수가 헛기침을 했다.
"좋습니다. 꼭 그렇게 하시고 싶다면 만나게 해드리지요. 오늘 저녁에 다시 만납시다."
이대진이 못이긴 척 다시 앉더니 정현희를 올려다 보았다.
"정부장도 앉지 그래."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