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윤호진의 연극세상 '공연벤처 시장파악이 중요'
기사입력 2000년 02월 20일 15시 45분
벤처 사업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요즘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일류 대기업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인재들이 속속 벤처의 꿈을 안고 퇴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연시장 또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엄청난 벤처 사업의 바다다. 아직 정립되지 않은 여러 미비점들 때문에 박차고 일어서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가능성이 비춰진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공연 벤처'와 관련해 나같은 연극쟁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시장파악이라 생각한다. 물건을 만들면 사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 또 물건이 안 팔리면 어떻게 개선해야 하느냐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거듭되는 실패로 인해 사라져 갈 많은 벤처기업처럼 관객들에게 외면 당하는 작품들과 극단들은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사실 간단한 이치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내가 연극을 시작한지 30여년이 되었고 그간 여러 작품들을 연출해왔지만 항상 모르는 것이 관객의 마음이다. 물론 `신의 아그네스'나 `명성황후'같은 소위 `히트작'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관객의 마음은 영원한 미지수다.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관객들을 무시한 채 공연을 만들어 실패를 보는 제작자들을 우리는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민감하고 까다로운 관객들의 마음을 읽어 내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한달에 수천장씩 쏟아지는 신인가수들의 음반도 제작될 당시에는 모두들 밀리언셀러를 꿈꾸지만 살아남는 음반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수천억을 들여 만드는 영화도 작품성을 평가하는 기준과 관객들에게 사랑받아 성공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물론 두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이 최상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편수로 따지자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것이 우리 공연계의 현실이지만 관객들에게 널리 오랫동안 사랑받는 작품은 흔치 않다.
수천년전 우리 공연문화는 제사 의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늘에 제상을 올리며 복을 기원하던 연극적 행위의 대상은 바로 신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관객이 바로 신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관객들이 당시의 신보다도 더 까다롭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우린 관객들의 마음을 읽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대학로를 비롯한 공연예술의 침체는 바로 관객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예술인들의 잘못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신도 아니고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관객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적중하지 못하고 비껴만 가는 화살을 보며 안타까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중하기는 어렵지만 한번 적중했을 때의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공연예술의 묘미는 바로 이런데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시시각각 변해가는 관객들의 마음을 포착해가는 데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이 마약같은 쾌감때문에 이 길을 30여년간 걷고 있는지 모른다.
[연극연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