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조영남 '우환이 큰 사람 만든다'
기사입력 2000년 02월 18일 14시 44분
신동엽군이 완전히 풀려났다. 강남길군도 회복중인 모양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비온날 무심코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로부터 흙탕물을 뒤집어 쓴다. 안쓸 재간이 없다. 후윌 스탑 다 레인!
그렇다면 과연 내 경우는 어땠는가. 오늘날까지 몇번이나 흙탕물을 뒤집어 썼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별로 떠오르는 것도, 왈칵 기억나는 것도 없다. 글쎄 두차례에 걸친 깨지는 경험, 소위 이혼사건이 있긴한데 내가 뻔뻔해서 그런가, 그게 진흙탕처럼 여겨지질 않는다.
그 비슷한 진흙탕같은 망신사건은 몇번 있었다. 그중에 한토막만 양념삼아 들어보시라.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막 가수로 데뷔했을 무렵 나는 젊은 목사님 한분을 가까이 알게되었다. 수원 중앙침례교회의 김장환 목사님이 바로 그 분이었다.
그때 목사님은 금세기 최고의 부흥사 빌리 그래함의 여의도 전도집회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기막힌 통역 능력으로 이미 정상의 스타목사님으로 붕떴을 때였다.
그즈음 김목사님의 인간관계가 내 딴에는 못마땅하게 여겨져 큰 맘먹고 한 투정을 했다.
"목사님! 목사님은 목사님이 되셔가지고 맨날 권력이나 돈만 밝히는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시면 사람들이 흉 보잖아요?"
나한테는 옛날부터 막 말을 하는 고약한 지병이 있었나보다. 그런데 순간 뭔가 썰렁함을 느꼈다. 도무지 놀라는 반응이 없는 거 였다. 놀라시기는 커녕 태연자약한 표정과 말투로 나의 투정을 이렇게 받는 것이었다.
"아이구! 그런 소리 마러! 사람들이 날보구 목사가 조영내미같은 딴따라하고 같이 다닌다구 얼마나 흉보는지 알아?"
똥묻은 개가 겨뭍은 개 더러 어쩌구 저쩌구….
이런류의 망신과는 비교도 안되게 우리의 신동엽과 또 강남길은 큰 마음 고생을 했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의 큰 상처를 입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요즘 나는 늦바람이 나서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의 강의를 부지런히 따라 다녔는데 노자의 말씀 중에 훌륭한 사람은 반드시 우환과 근심걱정 속에서 만들어 진다는 얘기가 속속 나온다. 시쳇말로 사람은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상하다. `환란과 고난속에서 구원이 온다'는 등 속의 얘기는 어릴 적부터 반평생 가까이 예배당에서 귀가 따갑게 들어 왔는데 왜 유독 노자의 말에 그토록 가슴이 절절히 져며오는가.
그것은 아마도 내 몸뚱아리에는 먼 중동쪽 피보다는 가까운 중국쪽 피가 더 많이 섞인게 원인인듯 싶었다. 그게 요즘 노자 강의가 일대 파란을 일으키는 원인인듯 싶었다.
어쨌거나 나한테는 그런 엄청난 우환이 없었으니, 또 그런게 닥쳐올 가망성도 농후하질 않으니 나는 훌륭하거나 큰 인물이 되기엔 예전에 글러먹었다.
하긴 나한테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누워 계시다가 세상을 떠나는 우환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옛날 그 우환 때문에 오늘날 성공한 거라고 박박 우겨대 봤자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그러나 남길아, 동엽아, 너희들은 제대로 된 우환을 제대로 관통했다. 거듭 말한다. 노자가 말했다. `우환이 큰사람을 만든다'.
조자도 말했다. 눈치도 없는가 조자는 조영남이다. `튕기는 진흙탕을 안뒤집어 썼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기왕에 뒤집어 썼다면 까집어 깨끗이 빨아서 다시 입어라!'.
P.S: 미국엔 침례교가 압도적 다수다. 김장환 목사님은 지난달 놀랍게도 세계침례교협의회 총회장으로 선임되셨다. 그옛날 나를 처음 미국으로 데려가 문물을 익히게 해주신 어른이다.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