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투쟁 (19)

기사입력 2000년 02월 17일 14시 36분


"갑자기 중국에는 왜?"

이맛살을 찌푸린 조재철이 이대진을 보았다.

"누가 먹다 흘린 오더라도 또 찾아낸 거야?"

아침 9시여서 사무실 안은 활기에 차 있었다. 이대진이 조재철의 책상에 바짝 다가가 섰다. 중국은 4부의 담당지역이다. 정상적인 오더라면 4부가 맡아야 한다.

"북한 오더관계로 베이징의 성한 공사와 협의할 일이 있습니다. 연락드리겠지만 시일이 조금 걸릴 겁니다."

"그렇다면 가야겠지만 이봐, 이젠 일 만들고 다니지 말어. 골치 아프단 말이야."

"자꾸 왜 이러십니까?"

허리를 굽힌 이대진이 조재철의 귀에 입을 가까이 붙였다.

"나한테서 상납이 없다고 이러는 건 아니겠지요?"

"이런 망할 자식이."

조재철이 눈을 부릅떴지만 목소리는 더 낮아졌다. 그가 잇사이로 말했다.

"너, 까불지마. 죽는 수가 있어."

"오늘 점심은 제가 사지요. 12시에 학림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약속있어."

"잠깐 들렀다 가시든지. 드릴 말씀도 있으니까."

이대진이 몸을 돌렸으나 조재철로부터 다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날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두 사거리 떨어진 일식집 학림의 방안에서 이대진과 조재철이 마주앉았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이대진이 미리 회를 시켜 놓았으므로 자리에 앉은 조재철은 젓가락부터 들었다.

"뭐야? 나한테 할 말이 있다는 건."

"이번 북한 오더로 내가 리베이트 1%를 먹습니다."

이대진이 불쑥 말하자 조재철이 생선회를 씹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네가 안 먹고 일할 리가 있나?"

"북한으로 가는 3%에서 나눠갖는 겁니다. 영수증은 북한이 처리해주고."

"앉아서 거저 먹는구만. 북한 놈들한테 리베이트를 받으라고 꼬인건 너겠지?"

"자기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지 말아요."

눈썹을 치켜올린 이대진이 말하자 조재철이 흥흥 웃었다.

"어쨌든 대단해. 북한하고 커미션을 나눠먹다니 말이야."

이대진은 시선을 내렸다. 그것을 먼저 제의했던 김경희는 송환된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문책을 당해 북한으로 갔다고도 했다. 이대진이 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 하나를 꺼내서 조재철의 앞에 내려놓았다.

"내 리베이트에서 떼었습니다. 요즘 접대하실 곳도 많을텐데 쓰시지요."

"얼마야?"

"2000. 하지만 앞으로는 기대하시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대진이 통이 큰 건 알았지만 천단위로 상납받는 건 처음인데."

"나도 처음이오."

"후환은 없겠지?"

"서로 믿고 살자는 뜻인데 날 뭘로 보고 이러십니까?"

"좋아. 먹었다."

조재철이 봉투를 집어 주머니에 넣더니 시치미를 뚝 뗀 얼굴로 이대진을 보았다.

"그런데 출장 보고서를 보니까 정현희하고 동행이더구만. 괜찮겠어?"

"뭐가요?"

"둘이 같은 방을 쓸 거야?"

"확인하면 금방 알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방은 두 개 잡아놓고 침대를 같이 쓰면 누가 알겠나?"

"이런 제기."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회사 안에서 소문이 있어."

그러자 이대진이 쓴 웃음을 지었다.

"그따위 소문엔 신경 안씁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