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투쟁 (17)

기사입력 2000년 02월 15일 14시 27분


"며칠 전에 베이징 주재 한국 대사관으로 6．25때 전쟁포로였다는 탈북자가 전화를 해왔어요. 전쟁포로 다섯명이 북한을 탈출해왔다고 말이오."

양주를 두병째 열었을 때 안동성이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한쪽 팔로 아가씨를 안은 채였다.

"그런대 오전에 담당자한테 물어보았더니 연락이 끊겼다고 하더구만. 장난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거요."

잠자코 술잔을 든 이대진을 향해 안동성이 소리없이 웃었다.

"전화하고 나서 공안한테 잡혔을 수도 있다고 했어. 그리고 날더러 그런 일에는 신경쓰지 말라고 하더구만."

"그래서 신경 끊었소?"

시큰둥하게 이대진이 묻자 안동성이 아가씨가 따라놓은 술잔을 들더니 한모금에 삼켰다.

"이왕 버린 몸이오, 그래서 베이징 대사관에다 전화를 했지. 여직원한테 말이오. 그랬더니."

이제는 정색한 이대진을 향해 안동성이 입술 끝만 비틀고 웃었다.

"나하고 같이 근무한 적도 있는 여직원인데 내가 물었더니 까놓고 이야기 해주더구만. 조금 전에도 전화가 왔었다고."

안동성이 눈만 껌벅이는 이대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느덧 그도 정색하고 있었다.

"상부에도 보고를 했더니 무시하라고 했다는 거요. 장난 전화일 것이라고."

"확인도 안하고 말이오?"

이대진이 마른 목소리로 묻자 안동성은 머리를 끄덕였다.

"미묘한 사건이니까. 장난 전화이기를 바라는 심정일테지."

"당신은 그 전화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는 것 아니오?"

"이봐, 술 따라."

대답대신 안동성이 옆쪽 아가씨에게 눈을 치켜떠 보였다. 놀란 아가씨가 술잔에 서둘러 술을 채웠다. 술잔을 든 안동성이 흐린 눈으로 이대진을 보았다.

"아마 국장한테까지는 보고가 되었을 것이고 국장 행태로 보면 무시하라는 지시가 갔을 것 같소."

"개새끼들."

"이봐요. 싸잡아서 욕하면 곤란해. 나같은 놈도 있지 않소?"

입맛을 다신 안동성이 한모금 술을 삼켰다.

"사소한 일에 흥분하는 나같은 놈이 오히려 대국을 망치는 지도 모르지만 말이오."

"그래서 투쟁하자고 했군. 그래."

이제는 이대진이 한모금에 술을 삼키고는 안동성을 쏘아보았다.

"몇십억 달러 사업이 걸려 있다고? 한반도 정세에 중국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큰 것을 얻기 위해서 작은 것은 양보하고 희생한다고?"

그러자 안동성이 흥흥 웃었다.

"예상했던대로 당신도 흥분하는군."

"어떻게 할 생각이오?"

정색한 이대진이 안동성을 바라보았다.

아가씨들은 숨을 죽인 채 둘의 얼굴만 번갈아 바라보고 있다. 안동성이 길게 숨을 뱉었다.

"내가 할 일은 없어요. 당신도 잘 알다시피 내가 나설 일도 아니고. 나섰다가는 미친놈이 되어서 내 장래가 금방 끝나게 될 테니까. 그저 당신 일이나 음성적으로 도와주는 수 밖에."

"그렇다면 내가 나설 일은 더욱 아니겠구만. 그렇지 않습니까?"

턱을 내민 이대진이 잇사이로 물었다.

"그냥 술김에 뱉으면서 스트레스나 풀자는 의미였소?"

"답답해서 한 소리였지만 풀리지가 않는군 그래."

안동성이 말하자 이대진이 자리를 고쳐앉았다.

"그럼 나한테 생각이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