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일본서 뜬 `쉬리'와 최 민식
기사입력 2000년 02월 15일 14시 17분
요즘 일본 젊은이들을 만나면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이 있다.
"그 영화 봤어요? 어땠어요?"
내가 하는 질문이 아니다. 바로 일본 젊은이들이 내게 하는 질문이다. 그럼 내가 반대로 묻는다.
"너희들은 봤니?"
그럼 상대방은 그 때부터 기다렸다는 듯 평소의 일본인답지 않게 입에 침을 튀겨가며 한 영화의 전도사가 된다. 스토리는 이렇고 구성은 저렇고, 박력, 스피드, 스릴, 배우들의 연기는 어떻고 등등. 누구나 전문가고 누구나 극찬일변도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보면 영락없는 영화사 홍보직원이다. 그래서 한 번은 학교에서 만난 여대생에게 내가 말했다.
"한국에 가서 그 영화사 `홍보맨'하면 딱 알맞겠다！"
그러자 그 여대생 냉큼 한다는 말.
"그럴수만 있다면 얼마든지요！"
어느 분야든지 일본인들은 한 번 팬이면 영원한 팬이다. 연예인이든 예술가든 인기에 관계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인물이면 평생동안 정신적인 후원자가 돼 지켜 본다. 그래서 예술에 종사하는 일본인들은 인기에 관계없이 어느 한 순간도 자세를 흐트러뜨릴수가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떤 팬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한 영화에 대한 일본팬들의 관심은 이례적이다. 그 영화를 제작한 우리 한국인들도 깜짝 놀랄 정도다. 일본인들은 아주 집요하고 편집광적인 집착마저 보이고 있다.
이 화제의 주인공은 물론 `쉬리'다(일본인들은 쉬리 발음이 잘 안돼 '슈에리'라고 부른다).
지난달 22일 개봉 이후 나는 일본의 젊은이들로부터 지겨울 정도로 쉬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은 아예 내 쪽에서 먼저 "야 또 그 얘기냐"하면서 말을 막아 버린다. 왜냐하면 똑같은 얘기를 수백번도 더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강제규 감독이나 한석규, 최민식이 들으면 쬐끔 섭섭해 할지 모르지만 `쉬리'얘기만 나오면 나는 정말이지 저 멀리 도망가고 싶어질 정도다. 한번 시작하면 그칠 줄 모르는 '쉬리 광신도'들의 `홍보'때문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무서운 파급력 덕분에 한국으로부터 `쉬리'를 수입 배급한 시네콰논의 이봉우씨는 1억엔 이상의 광고효과를 얻게 됐다고 연신 싱글벙글이다. 하지만 나같이 현지인들을 만나 글을 써서 먹고 사는 르포작가는 수 백 번의 리바이벌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그래도 기분은 좋지만). 누구 말마따나 쉬리를 본 일본인들 모두가 `쉬리교'의 신도가 되는 모양이다. 자진해서 입에 침을 튀겨가면서 쉬리 선전에 열을 올리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담당 기자들의 말로는 전대미문의 일이란다.
이봉우씨의 말에 의하면 `2000년 일본 최고의 흥행영화'로 쉬리를 꼽고 있다고 했다. 1월에 만났을 때만 해도 관객 150만∼200만 명을 예상한다고 하더니 요즘은 300만명 이상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잡지는 아예 쉬리에 대한 특집 기사로 도배질을 하고 있다. TV는 TV대로 전례없이 많은 시간을 배당(15분 이상) 해 전국적인 '쉬리붐'을 조성하는데 일조했다. 민방은 사흘 동안 무려 10분이상을 쉬리에 대해 방송했다.
심지어 영화와 TV를 넘나들면서 연기활동을 하고 있는 한 남자 배우는, 자신이 출연하고 싶은 영화가 바로 `쉬리'같은 영화였다고 공개적인 인터뷰를 통해 밝혀 `쉬리'의 주가를 한층 더 높여줬다.
그런가하면 `쉬리'에 출연한 최민식은 일본에서 일약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쉬리'에서 보여준 냉혹한 카리스마적 연기 때문에 일본 여성들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최민식을 보기 위해 쉬리를 다섯 번이나 봤다는 일본 여성팬들도 부지기수다.
이렇듯 일본에서의 `쉬리바람'은 꺼질 줄 모른다.
빙점을 밑도는 추운 날씨에 꼬박 두 시간을 줄 서 산 것이 겨우 입석표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영화 `쉬리'. `쉬리'를 통해 한국은 일본에, 일본은 한국에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