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협이 선수들에게 드리는 글
기사입력 2000년 02월 15일 01시 35분
선수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선수협의회 송진우입니다.
프로야구선수협의 기치를 쳐든지 벌써 4주째. 이곳 서울은 다른 어느해 겨울보다 눈도 많이 오고 날씨도 춥습니다. 당장 달려가 함께 땀흘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만 이곳에 남은 선수들과 함께 동계훈련을 시작했는데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는군요.
이런저런 현실적인 괴로움이 마음 속에 떠오를 때면 지난 11년간의 프로생활을 되새겨 봅니다. 제가 신인이던 그때 우리의 선배님들이 하려고 했던 바로 그것을 이제 후배인 우리들이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힘을 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게 되기도 하고, 새하얀 눈길에 바른 발자국을 남겨두어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할 때면 더욱더 힘이 솟아납니다.
지금 이곳 선수협 사무실로는 우리가 이제껏 그라운드에서 무심히 바라봤던 야구팬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씩 찾아옵니다. 어떤 이해관계도 없는 그들이 우리의 용기를 북돋워주는 모습에 힘을 내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이 또한 요즘의 우리들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니 어쩌면 여러분들에게 저런 팬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하기까지 하군요. 저에게 힘을 주는 이런 여러가지 말들을 생각하니 이곳에 남은 것이 정말 후회없는 선택이었다고 다시 한번 느껴집니다.
며칠전 저는 또 한번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MBC－TV `정운영의 100분 토론'에 선수협의회와 KBO, 구단측 대표들이 참석해 토론을 진행했는데 두시간 가까운 생방송 토론이 끝나고 나서 그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생방송중에 접수된 시청자들의 의견을 숫자로 발표하는 그런 형식이더군요. 결과는 선수협을 지지하는 팬들의 전화가 5600여통, 순간 다음 얘기가 무척이나 초조하게 기다려졌지만 KBO와 구단의 뜻을 지지하는 전화가 10통이었다는 발표에 우리 모두와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지금 이순간 그 무엇이 두렵고, 그 무엇이 후회스럽겠습니까?
우리 야구인들에게는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어떤 교감이 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 믿음 하나로 이곳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서로의 여건이 달라 함께 생활하지 못하고 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함께 하나가 되리라는 것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돌아오는 그날, 저는 여러분들을 얼마나 따뜻하게 맞아야 하고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지를 매일매일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 모습은 경기가 끝난 후 한 경기의 결과를 흐뭇해하는 뜨거운 하이파이브보다 훨씬 뜨거워야 할텐데, 저를 비롯한 선수협 소속 선수 모두는 충분히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충분하게 전달될 수 있을지, 저희는 오히려 그것이 더 걱정입니다.
이제 3월,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전선수가 구단의 방해없이, 스스로의 의지로 총회에서 만나게 될 수 있도록 지금 우리 선수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수협의회는 우리 전선수들의 것이고, 우리 선수들이 지켜나가야 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KBO나 구단은 논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저는 여러분이 돌아왔을때 좀더 편한 마음으로 저와 해후할 수 있도록 어색한 서울에서의 생활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건강에 유의하시고 훈련 열심히 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밝아온 새해에 선수협의회 전 선수단을 감히 대표해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울에서 선수협의회장 송진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