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강우석 레디고 '이승엽 단죄 너무 가혹'
기사입력 2000년 02월 14일 14시 23분
스타가 되기도 힘들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더욱 힘들다는 말이 있다. 대중들의 기호가 다양해지고, 입맛도 까다로워진 요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쪽만 보아도 그렇다. 아무리 톱배우가 출연한 영화라도 영화내용이 기대에 못미치면, 1∼2주만에 극장에서 간판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고, 네티즌들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곤 한다.
영화제작자의 입장에선, 그 이름만으로도 일정한 관객동원이 보장될 때 그를 진정한 스타로 대우한다. 사실 그런 스타는 많지 않다.
스포츠쪽도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마이클 조던이란 대스타가 은퇴선언을 했을 때, 많은 스포츠팬들은 `마이클 조던같은 불세출의 스타를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란 생각에 아쉬움을 토해냈다. 미국의 농구팬들은 마이클 조던을 보기 위해 농구장에 갔고, 그가 속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시카고 불스팀을 응원했던 것이다.
우리 야구팬들은 지난해 이승엽이란 스타에 열광했다. 이승엽이 속한 야구단의 지역연고를 갖고 있지 않은 야구팬들도 그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아갔다.
그가 오늘 홈런을 못치면, 내일 치기를 바랐고, 그래도 홈런이 안나오면, 다음주를 기대했다. 우리는 얼마나 이런 대스타가 나오길 바랐던가.
그런 이승엽이 최근들어 `매국노'에 비교되고, 파렴치범처럼 몰아세워지는 상황을 보면서 당혹감마저 느낀다.
이미 알다시피 그는 야구계에 불어닥친 KBO와 선수협의회의 갈등 국면에서 선수협에 반대한다는 기자회견을 한 후 궁지에 몰리게 됐다. 여론조사에서 나왔다시피 선수협을 지지하는 대다수 야구팬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주장이었다.
나는 이승엽의 문제발언이 그의 확고한 소신인지, 주변사람의 부추김 때문인지, 분위기 파악을 잘 못했기 때문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역시 야구팬의 한사람으로서 생각하는 것은 대스타 이승엽의 몰락(?)은 야구팬들에게도 엄청난 손실이라는 것이다.
그의 나이 23세. 나는 그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다. 야구가 신이 나서 했고, 그걸 즐기는 팬들을 보면서 자신도 즐거워서 야구를 했던 `천진난만한 스포츠인'이었던 그가 이처럼 민감한 사안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과 신념을 갖고 이야기를 했을까.
그에게 쏟아지고 있는 단죄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들에겐 가장 중요한 문제인 연봉협상을 구단에게 백지위임하고,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는 그의 어두운 뒷모습을 보면서 무척이나 허탈하고 쓸쓸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지난해 그가 홈런행진을 펼치다가 잠시 주춤했을 때 나왔던 분석기사를 떠올렸다. 한 기자는 이승엽이 마음이 여려서 중요한 고비마다 홈런을 못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가 진짜 그처럼 여린 성격이라면 이번 사건으로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까. 그는 자신의 한마디가 가져올 엄청난 파장을 예상이나 하고 기자회견을 했던 것일까.
우리 야구팬들이 어렵게 나온 대스타를 보호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0∼20년 대중과 함께 할 진정한 스타가 나오기 위해선 스타의 부단한 노력과 자기관리가 필수이지만, 때론 팬들의 관대한 아량도 필요한 법이다.
나는 이승엽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다시 보고 싶다. 그가 시원한 홈런을 치고, 녹색의 그라운드를 경쾌하게 도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영화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