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전쟁소설] 분노의 바다 (117)
기사입력 2000년 02월 11일 13시 55분
한국 해군이 사용하는 하픈 함대함 미사일은 발사 직후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잠깐 상승할 뿐, 곧 하강하여 목표함정을 향한다. 적 레이더가 탐지하기 어려운 초저고도를 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문무대왕함에서 발사한 미사일 네 발은 아직도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이제 그것이 대함미사일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사령！ 공고에서 요격을 시작했습니다."
에가와 일좌가 부릅뜬 눈으로 디스플레이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드디어 이지스함 공고에서 스탠더드 함대공 미사일을 쏘아올린 것이다. 세미액티브 레이더 유도방식의 스탠더드 미사일은 목표에 명중될 때까지 레이더 전파를 쏘아주어야 한다. 미사일은 발사함정에서 쏜 레이더 빔이 목표에 맞아 반사된 산란파를 추적해 명중하는 방식이다.
공고와 함께 있는 방공구축함 사와카제도 스탠더드 미사일을 탑재한 것 같았다. 그러나 사와카제가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부터 명중될 때까지 계속 유도레이더를 조준해야 하는 데 비해 공고는 미사일이 목표에 근접한 최종 순간에만 유도하면 되는 방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미사일을 발사해서 동시에 여러 목표를 격추하는 것이 가능했다.
"공고에서 여덟 발을 발사했습니다. 각 표적당 두 발씩 할당됐습니다. 명중 18초 전！"
"멍청한 녀석들！"
에가와 일좌가 한국 해군에게 조롱을 퍼부었다. 대함미사일 공격이 시작된 줄 알고 놀란 것도 잠깐이었다. 겨우 네 발의 미사일이 솟았지만 그것은 목적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했고 공고함에서 쉽게 요격할 수도 있었다. 이지스함에게 미사일 네 발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어? 표적의 궤도가 바뀌고 있습니다！ 하강을 시작했습니다. 반복합니다. 표적 네 개 모두 하강궤도로 접어들었습니다."
"설마…."
에가와 일좌가 안색이 변하며 후카미 해장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입을 꾹 다문 후카미 해장보의 표정도 잔뜩 굳어 있었다. 그러나 곧 후카미 해장보의 눈빛이 번뜩였다.
"아스로꾸다. 놈이 아스로꾸를 쏜 거야！ 이런 망할！"
"그럴 리가 없습니다. 사령！ 놈들은 아군 잠수함을 탐지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에가와 일좌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저 미사일들이 애스록 대잠미사일일 가능성을 부정했다. 고속으로 항주하는 문무대왕함에서 해상자위대 잠수함을 탐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혹시 아라시오가 섣부른 행동을 했을까 의심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디젤잠수함이 동력을 멈춘 채 매복해 있으면 수상함정이 패시브 소나만으로는 도저히 잠수함을 탐지할 수 없었다.
"미사일들의 하강궤도를 계산해 봐！ 착수지점이 어딘지 빨리 보고하라. 시간이 없다. 서둘러！"
후카미 해장보가 에가와 일좌의 의견을 무시하고 직접 레이더 오퍼레이터에게 지시했다. 레이더 오퍼레이터는 표적으로 접근하는 스탠더드 미사일의 궤도를 계산하기 바빴으나 후카미 사령의 명령이 우선이었다.
"표적은 일정한 하강각으로 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궤도라면 예상 착수 지점은…, 예, 바로 이 곳입니다."
오퍼레이터가 조작을 마치고 보고하자 후카미 사령과 에가와 함장의 시선이 일제히 디스플레이로 옮겨갔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