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투쟁 (14)

기사입력 2000년 02월 10일 14시 24분


"젠장, 어떻게 된 일이야?"

슬금슬금 이대진의 책상 옆으로 다가선 조재철이 낮게 물었다. 그러나 시선은 앞쪽을 향해 있다. 오전 10시 정각이었다.

"사장이 9시 30분에 골프치러 갔다는 거야. 비서실에 물어보았더니 오늘 회사에는 들어오지 않는다는데."

모니터에서 시선을 뗀 이대진이 조재철을 올려다 보았다.

"골프가 급했던 모양이지요. 뭐."

"혹시."

조재철이 바짝 다가붙더니 앞쪽에서 귀를 세우고 있는 오성호와 차만석의 뒤통수를 흘겨보았다.

"네가 손을 쓴 것 아냐? 어제만 해도 9시 정각에 심판을 하겠다면서 기세가 등등했는데 말이야."

"난 꼼짝않고 여기 있었습니다. 조부장님."

"웃지마라. 소름이 돋는다."

혀를 찬 조재철이 이제는 머리를 숙여 속삭이듯 말했다.

"백실장도 조금 전에 무역협회에 간다면서 회사를 나갔단 말이다. 영문을 모르는 안상무는 나한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다니까."

"아마 오해가 풀렸겠지요."

"어떻게?"

그러자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오성호와 차만석이 일제히 의자를 돌려 이대진을 보았다. 그 꼴을 본 조재철이 눈을 치켜떴다.

"이 빌어먹을 특수팀놈들."

"국정원의 담당 국장이 다녀갔어요."

이대진이 말하자 조재철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어? 왜?"

"달러 문제를 해명하려고 내가 국정원의 비밀자금을 환전해 주었다는 것을 해명해 준 겁니다."

눈만 껌벅이는 조재철을 향해 이대진이 웃어보였다.

"사장이 놀랐을 겁니다. 아마 오늘 스코어는 형편없을 거요."

"그게 사실이야?"

"맹세코."

"네놈 맹세를 내가 믿을 것 같나?"

"믿지 않을 수가 없지 않소?"

그러자 어깨를 늘어뜨린 조재철이 길게 숨을 뱉었다.

"도대체 네 놈은 어디까지 갈 셈이야?"

"조선배를 앞세우고 갈 테니까 마음을 놓으쇼. 나보다 먼저 정상에 오르게 만들어 드릴 테니까."

"날 방패로 쓰겠단 말이구나."

"상부상조 하자는 거요. 두고 보시오. 2년 안에 조선배를 영업이사로 만들어 놓을 테니까."

"야, 시끄러. 애들 듣는데."

눈을 부릅떠 보인 조재철이 다시 차만석과 오성호를 향해 눈을 흘기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보스, 해내셨군요."

아까부터 입만 들썩이고 있던 오성호가 먼저 말했다.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저는 그 방법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이고, 이젠 살았습니다."

"사장하고 실장은 아마 믿지 않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한발 물러선 상황일 거야."

정색한 이대진이 말하자 차만석이 머리를 끄덕였다.

"북한 오더관계로 보스와 국정원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즈그들이 어쩔 것이여?"

눈을 치켜뜬 오성호가 목소리를 높였다가 목을 움추렸다. 머리를 든 이대진은 앞쪽에 앉은 정현희와 시선이 마주쳤다.

궁금한 듯 눈을 반짝이고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끼어들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이대진이 길게 숨을 뱉었다.

"어쨌든 그쪽 사람들한테 신세를 졌다. 너희들도 마음 고생들을 했을 테니 오늘 저녁은 회식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