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전여옥 '행복한 인생은 '일=취미'
기사입력 2000년 02월 09일 14시 41분
내게 있어 차라는 것은 신발이다. 그것도 아주 편한 캐주얼 신발이다. 그래서 내차는 사소한 상처투성이고 세차도 제대로 하지 않아 마치 재투성이를 뒤집어 쓴 듯 했다. 기자시절 갓 들어온 남자후배가 내 차를 탔다. 그는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전선배 밖에 안개가 끼었나봐요"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방금전에도 괜찮았는데, 웬 안개" 했다. 놀라서 유리 문을 내려보니 밖은 말짱한 것이었다. 원인은 내가 하도 차 유리를 닦지 않아 그는 안개가 끼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뒤 내 차의 별명이 `신데렐라'가 된 것을 듣고 나는 그 후배를 생각하며 실소했다.
차에 대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카매니아인 남편은 나와는 달리 차를 신주모시듯 한다. 그는 내 차를 탈때마다 차는 항상 소중히 다뤄야 오래가고 어쩌구하는 설교를 정말로 지치지도 않는 개척교회 목사처럼 되풀이한다. 또 남편은 본인의 차는 물론이고 내 차가 조금이라도 더러운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대개 시간이 나는 일요일은 내차를 세차장에 끌고가 내부 청소까지 해온다. 나는 그의 행동이 특별히 마누라를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차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다지 감사해 하지 않는다. 다만 당당하게 `땡큐'할 뿐이다.
문제는 우리 아들이다. 피는 절대로 속이지 못한다고 이 이이는 타고난 카 매니아인 것이다. 지금 30개월 된 이 녀석은 엄청난 자동차 수집광이다. 내 생각에는 그 애는 거의 300여대에 이르는 미니카를 소유하고 있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귀신같이 차 이름을 구별하는 것이다. 거의 27, 28개월 무렵부터 거리에 있는 차이름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티코다' `마티스다' `아토스다' 이렇게 경차부터 시작해 요즘은 아주 복잡한 모든 차를 다 알아맞춘다. `산타모다' `세피아다' `갤로퍼다' `슈마다'. 모든 사람이 다 신기해 할 정도인데 언제나 내 선배언니의 벤츠를 한번 얻어탄 적이 있다. 그 애는 그 경험이 꽤 감동적이었는지 그 다음부터는 어쩌다 벤츠가 지나가면 `벤츠다! 엄마 우리도 벤츠사자'라고 외쳐 가난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남편은 아무래도 그 아이가 천재가 분명하다고 흥분하고 있다. 남편은 이 아이를 세계적인 카레이서로 키워야 되지 않느냐고 진지하게 내게 의논까지 한다. 나 역시 그애가 차에 대해 엄청난 호기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행복한 인생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취미가 되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때의 고통을 나는 너무나 많이 목격해 왔다. 은퇴후 고급 자동차 딜러가 되겠다는 것이 꿈인 남편을 내가 말리는 이유도 그것이다.
[방송인 satvki＠chollian.net]
